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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소한 일상

정동심곡 바다부채길(1월8일)

by 타박네 2017. 1. 11.

            눈이면 좋았을 테지만 비도 나쁘지 않았습니다.

              비는 도둑고양이 걸음으로 진종일 내렸습니다.                     

 

 

             

             

 

 

 

             묵호수산시장에서 대게찜을 먹었어요.

               기대했던 만큼 실망도 컸습니다.

               구입한 대게들은 한결같이 다이어트를 어찌나 심하게 했는지

               게딱지에 긁어낼 내장 한 점이 없을 정도였거든요.

               사실 남 탓할 입장은 아닙니다.

               싸고 근사한 걸 바란 우리 도둑심보가 문제였죠.

               묵호수산시장을 한바퀴 휘이 돌아보니 대략 시세를 알겠더군요.

               발바닥 물집 잡히도록 돌아다니고 입 아프게 물어봤자 그게 그거겠다 싶었습니다.

               결국 고무대야 속 살아있는 대게 중 가격 맞춤한 것으로 사자 했죠.

               그때 바로 옆 산더미처럼 쌓아둔 이것들이 눈에 띈겁니다.

               반에 반도 안 되는 가격표를 달고서요.

               뭔가 미심쩍었지만 이런 데선 이렇게 사는 거야,

               실땅님의 단호하고 자신에 찬 말 한 마디에 그만 헤까닥 넘어가고 말았죠.

               싼게 비지떡이고 물건을 모르겠거든 돈을 더 주라던 조상님 말씀이

               그때는 전혀 떠오르지 않았습니다.

               다행인 건 가까스로 돈 값어치만큼 게다리살이라도 파 먹을 수 있었다는 거.

               굳이 게딱지에 밥 비벼먹겠다고

               시커멓게 말라붙은 내장을 벅벅 끍어대던 제이를 생각하면 지금도 웃음이 납니다.

               이제 막 사랑을 시작한 것으로 보이는 커플도

               우리 옆자리에서 대게찜을 먹고 있었습니다.

               남자는 연신 실한 다리를 잘라

               눈만 마주쳐도 웃을 준비가 되어있는 여자에게 건네주고 있었죠.

               식당 찜솥에 들어가기 전까지 살아있었던 게 분명해보이는 대게들은 

               점수 좀 따고 싶은 남자의 마음처럼 크기도 합니다.

               안 그려려고 하는데도 자꾸 그쪽으로 시선이 갑니다.

               스텐대접에 그대로 버려진 이따시만한 게딱지 두어 개만 집어와 제이에게 주고 싶었거든요.

               집으로 돌아오는 길, 차 안에서 참았던 그 말을 기어이 하고 말았죠.

             한 번 터진 웃음은 쉽게 그치지 않았습니다.

               씁쓸하고 민망했던 묵호항에서의 시간들을 그렇게 털어버리고 왔습니다.

              

             묵호에서 뺨 맞고 비천골에서 위로받았습니다.

               언제 가도 푸근하고 정겨운 곳이죠.

               문을 열고 들어서자마자 고구마 익는 냄새가 먼저 달려나옵니다.

               장작난로,조금 특별한 커피,예쁜 커피잔,꽃과 오래묵은 인연 연두.

               환상의 조합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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