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박네 2015. 2. 2. 09:37

 

집으로 가는 길.

은행나무 두 그루가 보이는 건널목 앞.

아주 오래 전,

나주댁 아주머니가 젓가락 장단에 맞춰 구성지게 노랫가락을 뽑아내던

대폿집 처마 밑쯤 되는 것 같다.

갈기갈기 찢긴 누더기를 걸친 채 웅크리고 앉아있던 남녀가

그 앞을 지나는 나를 불러 세운다.

빈 방이 있으면 하룻밤 재워달라 한다.

초라하기 짝이 없는 거지 행색임에도 말투는 간교하고 눈빛은 사악하다.

집이 있는 쪽을 흘깃 한번 바라보고는 콧구멍만한 빈 방 하나를 떠올렸다.

하지만 이내 고개를 돌려 그들 못지않은 싸늘한 시선으로

안 돼요.

우리 집엔 빈 방이 없어요.

단호한 대답을 남기고 돌아서 건널목 앞에 섰는데

눈 앞에서 쾅 요란한 폭음과 함께

커다란 짐짝이 공중에서 폭발하며 산산조각이 난다.

그 짐을 싣고 가던 작은 말 한 마리도 상처를 입었다.

저들 짓이구나.

집 안으로 저들을 들였다면 어쩔 뻔 했나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꿈에서 나오니 서글픔이 밀려든다.

이제 나는 꿈에서조차 사람을 믿지 못하는 삭막한 사람이 되었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