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희씨네 닭장
깃털에 윤기가 좌르르 도는 수탉, 잘 생겼다.
암탉 몰고 다니는 걸로 봐서 꼴값 꾀나 하는 듯.
아침에 닭장 문 열어주면 동네방네 싸돌아다니다
해저물녘 총총 제집 찾아 들어온다는 경희씨네 닭들.
운동량이 많아 그런가 돌아다니며 아무거나 막 주워 먹어 그런가
알이 제법 실해졌다고 자랑한다.
거실 한켠을 턱 차고앉은 화목난로에 반해 올 겨울 경희씨네 출입이 잦았다.
경희씨가 몸서리치며 싫다는 참나무 연기와 그을음이 나는 그렇게 좋을 수 없다.
갈 적마다 닭장에 들어가 알 훔쳐오는 재미도 쏠쏠하다.
어젯밤 셀 수도 없을 만큼 많은 등장인물들이 나타나
한꺼번에 와글와글 떠드는 통에
미처 그 이야기를 다 추스리지도 못한 채 꿈에서 깨어났다.
그리고 두통이 찾아왔다.
타이레놀 한 알을 먹을까 하다 그만두고 책을 펼쳤다.
형광등 불빛에 놀란 바퀴벌레들처럼 낱낱의 글자들이 순식간에 흩어진다.
이제는 바느질만큼이나 책읽기도 버겁다.
문제는 시력이 아니라 집중력이다.
그럴 때는 긴 시간 집중할 필요 없는 티비와 스마트폰이 대안인데 그것 참...
욕하면서 드라마 보고
관음증 환자처럼 인터넷에 떠도는 남의 사생활 염탐하는 짓거리도
오지게 재밌다.
특히 그 모든 자극적이고도 현란한 가십거리들 관람하는 데는
눈알 굴릴 필요도 없고 책장 넘기는 것같은 최소한의 수고도 없이
그저 검지손가락 하나 까딱까딱 하면 된다는 사실!
요즘 잘 나가는 걸그룹 소녀들 하의실종 패션,
공항 패션,세 명의 여자와 외도했다며 소송당한 가수 기사에
피 냄새 맡은 피라냐 떼들마냥 몰려들어 성실하게 달아둔 댓글 서핑하다
그 중 눈에 띄는 외도 증거 잡는 비법에 실소를 하는 순간,
휴대폰이 부르르 치를 떤다.
그리고는 화면 가운데 풀씨 카톡 대화창이 빼꼼 떴다 사라진다.
이제는 말 없는 조용한 손가락 수다가 익숙하다.
해도 어디 타액 분사해가며 머리 맞대고 떠드는 것만 하랴.
울엄마 봤으면 까치가 집 짓게 생겼네 할 판인 헌 수세미같은 머리에 물 바르고
떨어뜨리면 발등 깨게 생긴 눈꼽 서너 덩이 떼고 현관을 나섰다.
39 -2번 버스를 타러 가는 길에 다롱이나 좀 볼까 했더니
욘석들 거의 제 몸통만한 뼈다구 서너 개 물어다놓고는 어디론가 사라지고 없다.
보이차나 한 잔 하자며 살살 꼬드껴
휴일 오전 이불 속에 똬리 틀고 있던 나를 일으켜 세운 경희씨네 집은
우리집에서 버스로 네 정거장 거리에 있다.
경희씨네 마당에 들어서자 처마 밑으로 길게 빠져나온 연통에서
참나무 연기가 솔솔 피어오르는 게 보인다.
남쪽나라 고향을 떠나온 아버지는 걸핏하면 어린 자식들 앉혀놓고
느그덜 본을 잊으면 안 된다,그건 느그덜 뿌리나 매한가지다 하시면서
지금은 쓰지도 않는 본적지 주소를 외우게 하셨다.
그건 마치 머나먼 타국에서 돌아갈 기약 없는 바다 건너 아득한 고국을 향한
이방인의 절규와도 같았다.
경남 산청군 생비량면 가계리,
우리 형제들이 제비새끼들마냥 짹짹 외던 그 아버지의 고향 주소는
국민교육헌장과 더불어 육십을 바라보는 지금까지 뇌리에 깊이 각인 되어 있어
어쩌면 임종 그 순간에도 떠오를지 모를 판국이다.
그 애달픈 아버지의 고향 사람을 연천에서 만났다.
작년 늦가을 혹시 남았을지 모를 투구꽃이랑 바위솔이나 보러 가자며
경희씨 부부와 동막골을 향하던 차 안에서였다.
초면 갓 지나 어색한 자리였다.
우스개 소리 끝에 예의 그 민증 까고 출신지 터는 과정에서
산청 생비량면이 나온 것이다.
그렇게 경희씨 남편과 나는 찻잔을 기울이며
기억조차 가물가물한 산청의 대숲과 감나무와
개울 옆 느티나무 얘기를 하는 고향 까마귀가 되었다.
어제 오후,
커피로 시작해 숙성 기간의 차이가 나는 두 종류의 보이차와 녹차,
목련꽃차로 이어진 차담은 매화꽃차에 이르러서야 끝이났다.
은대리 벌판 끝자락이 어둑신해질 무렵이었다.
서둘러 자리를 털고 일어서자
반나절 차 시중 들며 온갖 물고문(^^)하시던 생비량면 아저씨가
닭장에 들렀다 가세요 한다.
순간 경희씨와 나, 푸하하 박장대소했다.
사실 내가 경희씨네 도착해 난로가에 자리를 잡고 앉은 잠시 뒤
마당에 있는 남편을 향해 경희씨,봄날 종달새같은 목소리로
여보, 오늘은 달걀 꺼내지 마세요 했었다.
벌써 몽땅 꺼내왔는데? 당황한 목소리가 현관 유리문 너머에서 날아들었고
안 돼요.언니가 직접 꺼낸다고 했어요
경희씨 다급한 목소리가 다시 그쪽으로 날아갔다.
유리문을 사이에 두고 분주히 오가는 그들 내외의 대화 사이에 나는
으아아 안 되는데...
그거 꺼내는 손맛 좀 즐기려던 참이었다구요 하며
주객이 바뀐 원망을 보탰었다.
알들은 이미 둥지를 떠났고 상황은 그렇게 종결된듯 싶었다.
지푸라기 속에 담긴 그 불완전한 생명을 볼 때마다
매번 처음 보는양 나는 감탄사를 내지르곤 한다.
어쩌면 지구상에 존재하는 가장 완벽한 불완전 생명체인듯.
손에 쥐었을 때 전혀 불편함 없는 타원형의 알에서 전해지는
따스한 온기는 또 어떤가.
신비롭구나.
암탉들의 비명을 무시하고 그렇게 날름 집어 온 신비로운 생명체는
다음 날 우리 집 식탁 위에 노른자 반쯤 익힌 프라이로 올려진다.
내 삶도 참 모순 투성이다.
어느 틈에 주워왔던 달걀을 다시 닭장 안 제 자리에 넣어뒀을까.
마침내 따순 손맛을 볼 수 있도록 배려해주신 경희씨 옆지기분께 감사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