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 고대산
녹지 않은 눈이 있을 거라 짐작치 못했다.
차에서 내리자마자 귓볼과 콧등이 시릴 거라고도
미처 생각하지 못했다.
동네 산이라고 만만히 봤다가 오르기도 전에 한방 먹었다.
1,2 등산로 입구는 휴양림 공사로 어수선하다.
겨울엔 산행을 안 하니 당연 아이젠도 없다.
실땅님 거 한짝 빌려 신었다.
이거라도 없었으면 포기하고 내려왔다.
도너츠에 슈가파우더 뿌린듯.
춥기는 해도 다행히 바람은 불지 않는다.
등에 햇살을 받으며 컵라면을 먹었다.
정상 인증샷을 찍고 내려가는 산객 몇분이 명당이라며 부러워했지만
10분 이상 앉아 있기가 힘들 정도로 추웠다.
깔고 앉은 자리에 물을 쏟았는데
라면 먹고 일어나자 얼음이 되어 툭툭 떨어진다.
처음 한두 젓가락은 환상적으로 맛있었다.
문제는 빠르게 식어가는 것.
온과 냉 ,두 가지 맛 라면.
다음엔 왕큰 사발면을 가지고 가야지.
방공호 안에서.
겨울산에서 만난 유일한 초록.
어쩌면 눈썰매도?
눈빛 교환을 하자마자 서둘러 배낭 속 비닐깔개를 꺼냈다.
얏호~ 내달리고 싶었으나 꼼짝도 않는다.
눈이 더 쌓여야 할라나?
실땅님이 뒤에서 밀어줘 억지춘향으로 조금 미끄러져 내려가긴 했으나
그 바람에 비닐깔개만 찢어졌다.
엉덩이 안 찢어진 게 다행.
연천 수레울 아트홀 근처에 카페가 하나 생겼다.
하산하고 마시는 커피 한 잔.
첫모금에 캬아~ 소리가 절로 난다.
누가 뭐래도 내 산행의 완성은 이런 거다.
2코스로 올라 1코스로 하산했다.
산행 시간 4시간40분.
꽃이 있었으면 어림없는 시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