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리지아 향기 맡으며
전생에 마나님 나라 몇 개를 팔아치웠길래
수시로 꽃다발 진상까지 하며 사는지는 모르겠으나
그런 남편과 사는 친구가 부러운 걸 보니
알게 모르게 나도 참 많이 변했습니다.
언젠가 이태원 거리에서 기막히게 예쁜 꽃을 본 적이 있어요.
아이보리와 연분홍 꽃잎이 마치 고운 비단조각 같았죠.
게다가 참 고급스럽게도 묶어 놓았더라구요.
꽃가게에 진열된 꽃들 중 내 눈길이 가장 오래 머문 꽃이었습니다.
그날 이후 문득 생각날 때마다 장미 종류인가 검색도 해보고
길가다 꽃집이 보이면 일부러 들어가 살피기도 했지만
적어도 제 행동반경 안에는 없는 게 확실했어요.
너무 우아하고 귀티가 나서
감히 이름과 가격을 물어볼 생각조차 못한 게 내내 한스러웠죠.
오늘, 전생에 남편이 팔아먹은 나라를 되찾아온
친구 집 차탁 위 안개꽃을 보다 문득 그 생각이 떠올랐어요.
대충 꽃 생김새를 설명하니 리시안셔스라고 이름을 알려줍니다.
고기도 먹어본 놈이 먹고
꽃도 신물나게 받아본 사람이 알기도 잘 아는 모양입니다.
돌아오는 길 시내 꽃집에 들렸습니다.
졸업 시즌이라 꽃값이 많이 올랐더군요.
손가락 가리키는 것마다 헉~ 소리가 절로 나올 만큼 비쌌어요..
제아무리 그래도 리시안셔스라면
과부 딸라변을 내서라도 한아름 사들고 올 참이었죠.
정말 다행스럽게도...없었습니다.
대신 쿨하게 프리지아 한 다발 샀어요.
말이 좋아 한 다발이지 고작 예닐곱 송이.
하지만 그 향기는 참으로 푸짐합니다.
이렇게 좋은 걸!
나에게 내가 준 설날 선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