텃밭일기7
와우!제가 심고 물주고 해놓고도 믿기지 않는 광경입니다.
이틀 못 가본 사이 살 오른 오이 다섯 개가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땅바닥까지 늘어졌어요.
이러니 제가 농사에 소질이 있다 했죠.
오늘도 어김없이 울타리 밖에 등장하신 동네 어르신,
말로는 꽃이 피니 참 좋다시면서
제 일하는 모습을 한참 지켜보다 가셨습니다.
내년에는 더 예쁜 꽃밭을 만들어 보여드리겠노라 했더니
가을엔 꽃씨 좀 받으러 와야겠네 하십니다.
야생화며 농사며 모르는 거 없는 그녀님에게서 배운 대로
원줄기 옆에서 다시 자란 순을 따줬어요.
삐죽 올라간 줄기도 한 번 더 묶었구요.
바닥을 기는 호박줄기는 끌어다 울타리에 달아매고
밭고랑이 터질 것처럼 부풀어오른 상추와 아욱도 시원하게 솎아냈습니다.
본 바는 없지만 대략 토마토 순자르는 방식이면 되겠거니...
그 공식에 준하여 고추 가지도 말끔하게 정리했죠.
잘라낸 고추 가지에서 잎을 따 모으니 나물 한 접시는 좋이 되겠어요.
이 모든 일들을 마치 오래전부터 해왔던 것인양 척척 해나가며
스스로 대견해 콧노래가 나옵니다.
땅콩꽃이 피었어요.
꽃이 시들면 그 줄기가 다시 땅으로 기어들어가
땅콩을 매달게 된다고 들었습니다.
두 눈 부릅뜨고 지켜볼 참입니다.
양귀비를 닮았으나 양귀비는 아닌 걸로 보입니다.
어쨌든 이제 꽃밭스럽습니다.
분홍 수레국화
풀인가 하고 뽑으려던 손을 멈췄습니다.
쇠채아재비라는 숟가락 명찰 옆에 조로록 올라왔어요.
실제 본 적이 없어 장담할 수는 없지만 확실해보입니다..
밭은 쇠비름 천국입니다.
손에 잡히는 대로 뽑아내는 중에도 자꾸 꽃이 보입니다.
참 예쁘기도 하죠.
호미를 번쩍 들어 내리찍으려다 말고 오늘 풀뽑기를 접어버렸습니다.
거침없이 자란 홍화 틈바구니에서도 기죽지 않은 쪽들.
앞으로 한 열흘 정도 더 키우면 생쪽염색을 해 볼 수 있겠어요.
으아,벌써부터 설렙니다.
오늘 채소장사 참 잘했습니다.
다 팔아치우고 집까지 들고 온 건 오이 하나와 브로콜리 하나,
이 정도 수완이면 부자되는 건 시간 문제죠.
상추와 고춧잎 봉다리를 들고 1층 고마워요할머니집 문을 두드렸습니다.
아이고 참도 맛있겠다 땡큐! 아리가또!
유어 웰컴!
있어뷔는 인사를 주고 받았죠.
할머니 영어도 잘 하시네요?
하모,내 쫌 한다.
오늘은 기어이 커피 한 잔 마시고 가라며 손을 잡아끄십니다.
식탁에 앉자 맞은편 탁자 위에 사진액자가 보입니다.
어라? 이건 누구래요?
내다.
통영 바닷가에서 찍은 건데 사십 년도 넘었지 아마?
비스듬히 선 나무 모양을 따라 포즈를 취하고 찍은 거랍니다.
지금 할머니 연세 여든 여섯,
사진 속 할머니는 사십대 초반쯤인 것 같네요.
어쩌면 할머니 생에서 가장 빛나던,
가장 행복했던 순간이 아니었을까 생각했습니다.
저 사진 말고는 어두컴컴한 벽을 더듬어 봐도
별다른 사진이 더 보이지 않았거든요.
누구에게나 있죠.
생의 반짝 빛나던 한순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