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소한 일상

지난 7일간의 기록

타박네 2016. 7. 16. 17:55

 

              지난 금요일 오후, 나홀로 부산행 기차를 탔습니다.

              일요일 꽃탐사 장소가 부산 금정산이라 하고

              금정산이면 언니가 사는 아파트에서 그다지 멀지 않은 곳이기에

              먼저 내려가 언니집에 머무르다 출사 당일 합류하기로 한 거죠.

              아직 본격적인 휴가철이 아니어서 그런지 해운대의 아침은 한가로웠습니다.

              전망 좋은 카페에서 느긋하게 커피를 마시고

              소란스런 자갈치 시장으로 수국 풍성하게 핀 범어사로,

              그렇게 하루가 저물었습니다.          

 

         이번에도 공주님과 밥 한 끼 먹을 짬이 없었어요.

        저녁 무렵 잠시 카페에서 만나 안부를 묻고 얼굴 한 번 보고는 헤어졌습니다.

        먼데서 왔다고 직접 만든 찻주전자를 선물로 주셨는데요.

        이 도자기 주전자는 다음 날 아침 뜻밖의 용도로 정말 요긴히 쓰였습니다.

        무단침입한 괴한의 머리통을 가격한 무기가 되었다던가

        가치 없이 간장 용기 따위로 사용했다는 얘기는 아닙니다.

        생각할수록 웃음이 나네요.

 

        일요일 아침,언니가 우리 꽃동무들에게 줄 김밥을 싸고 있었습니다.

        일부러 집앞까지 동생을 데리러 와주시는 것에 대한 감사의 표시였죠.

        온갖 정성을 들였으므로 맛은 나무랄 데 없이 훌륭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주방칼이었어요.

        기껏 잘 말아놓은 김밥을 칼이 짓뭉개고 있는 거에요.

        어차피 폼날 음식은 아니지만

        한 입 크로 얌전하게 썰어 포장하려던 계획에 비상이 걸린 거죠.

        아이고, 이런 칼을 들고 전쟁터에 나가 적장 목 한 번 베려면 슥달열흘 걸리겠네

        농지거리를 하면서도 황당한 상황 앞에 대책없이 속만 탔습니다.

        급한 마음에 저는 칼이든 칼 가는 연장이든 무어라도 사볼까 하고

        근처 편의점을 돌아다녔죠.

        식전 댓바람에 방금 감은 머리를 풀어헤치고 들어가

        혹시... 칼 있어요? 묻는 나이든 여자를 보면서

        편의점 직원들은 무슨 상상을 했을까요?

        마치 광녀 코스프레라도 하듯 동네를 휘젓고 다녔지만 

        주방칼은 커녕 과도 하나조차 살 수 없었습니다.

 

        궁하면 통한다 했던가요?

        낙심하고 들어온 그 순간

        정수기 위에 올려뒀던 저 찻주전자가 눈에 들어오더군요.

        동시에 주전자 바닥이 거칠어 식탁유리에 생채기를 낼 수 있으니

        집에 가지고 가면 곧바로 사포질을 하라던 공주님 당부도 떠올랐습니다.

        이어 칼이 무디어지면 급한 대로

        항아리 두껑에 썩썩 문지르곤 하셨던 엄마 생각도 났구요.

        그렇게 저 귀한 도자기 주전자는 따끈한 물과 찻잎을 품어보기도 전에 

        발라당 뒤집혀 칼갈이로 전락했습니다.

        덕분에 우리는 김밥을 한 줄씩 붙잡고 물어뜯어야 하는

        원시적인 식사를 면할 수 있었구요. 

        고맙습니다,공주님!                 

 

             돌가시나무와 흰여로,꽃창포, 큰하늘나리가 피어있는 금정산 꽃소풍은

               기대 이상으로 즐거웠습니다.

               일행과 떨어져 길을 헤매다 우연히 닭의난초를 찾았을 때는 뛸듯 기뻤죠.

               실제로 겅중겅중 뛰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얼마 뒤 허리에서 비상벨이 울렸죠.

               삐끗했다는 표현말고는 달리 설명할 길이 없는 허리병은

               앓아본 사람이나 그 통증을 짐작할 겁니다.

               부산에 남아 치료를 하고 올까 망설이다

               설마 죽기야 하겠어 하는 심정으로 어찌어찌 돌아오긴 했습니다.

               불편한 몸은 둘째 치고

               좋은 꽃소풍에 찬물을 끼얹은 것 같아 마음이 편치 않았습니다.

               내색하진 않았지만 무거운 마음 탓이었을까요.

               집이 주는 안도감에도 불구하고 결국 구급차에 실려가는 신세가 됐죠.

               하지만 뭐 원투번 해보는 장사 아니라고

               삼박사일 입원 중에도 나름 잘 놀았습니다.                 

               금정산에서 바라본 풍경입니다.

               금강산도 식후경이고 금정산도 사지멀쩡일 때 얘기죠.

               여기서부터 아름답던 풍경들은 한순간 험하고 두려운 장벽이 됩니다.

               우뚝선 저 바위 앞에서 부서지고 상하기 쉬운 물질로 만들어진 인간의 육신이

               얼마나 초라하게 느껴지던지요.

               그나마 다행이었던 것은 이때만 해도 통증이 견딜만은 했다는 거에요.                                   

               한 이틀 더 입원해 있으라고 붙드는 걸 뿌리치고 보따리를 꾸려 퇴원하던 날,

               쨍한 하늘에 누군가 만들어 걸어놓은 듯한 구름이 너무도 아름다워

               비현실적이기까지 했습니다.

               좌우지간 죽지만 않으면 아름다운, 재밌는 세상입니다.

              굳이 서둘러 퇴원하겠다니

              실땅님이 그 음흉한 속내를 알겠다는 표정으로

              밭에 가보고 싶어 그러지? 합니다.

              아니라고 박박 우겨댈 수가 없었죠.

              남편의 감시하에 텃밭 양철문을 열어봤습니다.

              식물들의 시간은 인간의 것보다 월씬 더 빠르게 흐릅니다.

              홍화는 꽃차를 만들어보기도 전에

              붉은 꽃잎을 따모으기도 전에 거의 다 시들었으며

              허리춤까지 자란 아욱과 상추는 꽃 피울 준비를 마쳤더군요.

              그리고 며칠 사이 밭은 다시 풀들이 점령했습니다.

              전의를 상실한 저는 망연자실 그저 한숨만 치쉬고 내리쉴 밖에요.

              이제 텃밭관리는 남편의 손으로 넘어갔습니다.

              아주 재미난 장난감을 빼앗긴 것처럼 허탈한 심정을 알기나 할까요?

              뭔가 새로운 작전을 짜긴 해야겠는데 말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