텃밭일기

텃밭일기15

타박네 2016. 9. 3. 23:05

 

 

             엊그제 탐스런 꽃을 처음 본 것 같은데 그새 장정 팔뚝만한 수세미가 축축 늘어졌습니다. 

              이웃 아주머님이 울타리 건너편에 심은 수세미가 텃밭 울안에 주렁주렁 매달렸어요.

              보니 탐납니다.

              때마침 울타리 밖에서 주님의 은총으로 세상에 나온

              아름다운 꽃과 열매들을 찬양하고 계시던 자매님, 아니 수세미 주인께

              방금 딴 애호박 하나를 드리며 나중에 수세미가 여물거든 하나만 주십사 했죠.

              거래는 유쾌하게 끝났습니다.

              내년에는 수세미 농사도 추가해야겠어요.

              기관지에 효험이 있다는 효소도 좀 담그고 나이롱 수세미 대신으로 설거지도 하구요.

              샤워타월로 써보니 때도 잘 닦이고 시원해 기막히더라는 분이 있었는데

              그 말의 진실성 여부도 검증해보고 싶네요.

 

              지디엠 농장에서 얻어온 베트남 채소입니다.

              저는 박하로 알고 있고  어떤 친구는 방아라고 부릅니다.

              당시 정확한 이름이 궁금해 지디엠에게 물었었죠.

              베트남 말로 뭐라 했는데 기억나지 않습니다.

              지난 주말,

              호박과 깻잎,청양고추와 함께 이 잎을 뜯어 넣어 반죽한

              부침개를 얻어 먹었는데 의외로 맛이 근사했어요.

              오랜 시간 무더웠던 날씨 때문일까요?

              모든 작물들이 줄기에 힘 붙일 겨를도 없이 겅중 웃자라기만 했습니다.

              그러다보니 대부분 쓰러져 누웠죠.

              메리골드도 예외는 아니어서 넘어지는 과정에서 부러지기도 하고

              땅에 닿은 부분들이 썩기도 했어요.

              다행스러운 건 더위가 한풀 꺽이자 꽃들이 다투어 피기 시작한다는 겁니다.

              해서 접은 기대를 다시 펼치게 됐습니다.

              부지런히 따모으면 염색 한 번은 실컷 할 수 있겠어요.

             곤드레나물로 알려진 고려엉겅퀴 숲입니다.

              꽃으로 뒤덮힐 날이 머지않았어요.

              족히 수백만 송이 될 걸요,아마.

            남편이 뽑아버린 백일홍 자리에 돋아난 어린싹들입니다.

              빠르게 자란 꽃들 틈바구니 치어 숨죽이고 있다가

              뒤늦게 탁 트인 하늘 구경을 하게 된  잠자던 씨앗들인지

              뽑히는 순간 급히 씨앗을 털어낸 늙은 꽃들의 부활인지 알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못내 아쉬움으로 남았던 터라 그립던 이 다시 만난듯

              마음 속 따순 물결이 출렁합니다.

             텃밭에는 풀들만 기를 쓰고 올라오는 게 아닙니다.

              연둣빛 새싹을 보며 지난 봄을 다시 불러들입니다.

               아피오스, 살아있었네요.

             남편은 낫으로 풀들을 베어냈을 뿐이어서

              무얼 심자면 곡괭이로 땅을 깊게 파 풀뿌리부터 파내야합니다.

              단단히 움켜쥔 흙을 뿌리에서 털어내고 고랑을 다듬었어요.

              배추 모종을 심고 무씨까지 뿌리고 나자 더는 힘들더군요.

              상추와 아욱은 다음으로 미룹니다.

              전화 한 통이면 어김없이 재벌친구가 냉커피를 들고 달려옵니다.

              특별히 너는 배추 세 포기 줄게.

              고마움의 표현이죠.

              대신 집게 가지고 와서 네 배추 벌레는 네가 잡아.

              난 안 잡을거야.

              물귀신처럼 잡고 늘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