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Book소리

기로에 서다

타박네 2016. 10. 19. 16:26

          전곡 중앙도서관 독서토론 동아리 풀씨.

               십여 년 전 스무 명으로 시작한 1기 회원 중

               지금의 2기까지 건너온 사람은 내가 유일하다.

               남아도는 시간 처리 차원에서 그리된 것일 뿐

               결코 독서에 남다른 열정이 있어서는 아니었다.

               올들어 건성 야생화탐사에 대충 영어공부니 설렁 텃밭농사니 하며

               미친년 널 뛰듯 하는 통에 간당간당 붙어있던 책 읽는 습관과 관심이

               하반기 들어 거의 완벽하게 사라졌다.

               치졸한 변명같지만 거기에 노안과 시력저하는 낙타를 쓰러뜨린 결정적 한 방,

               무거운 등짐에 마지막으로 얹힌 깃털 하나였다.

               책장을 열면 거인의 눈알을 보고 놀란 소인국 백성마냥

               글자들이 빠르게 흩어지곤 하는데

               기껏 어르고 달래 모아놔도 눈의 피로감으로 장시간 집중하기도 힘들다.

               말하다보니 치졸에 비루하기까지,

               슬프다.

 

               그러구러 모임 공지가 뜰 때마다 한편 찝찝하던 마음조차 뻔뻔해지면서

               노인 한 명이 지구에서 사라진다는 것은

               도서관 하나가 사라지는 것과 같은 의미란 것을,

               하여 이 예비노인 한 명은 그 자체로 이미 대하소설이며 백과사전이라는 것을,

               젊은 너희들아 아느냐, 커피 홀짝이며 느물거리기 일쑤였다.

               그래본들 개운하지는 않았다.

               신영,혜진,연수,은화,미니.

               첫사랑에 실패만 안 했다면 딸같았을 젊은 친구들이다.

               지적 호기심에 목마른 그녀들의 책 먹어치우기는 무서울 정도다.

               돋보기 안경을 쓰지 않으면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깨알같은 글씨가 빼곡한 필사노트와

               책장을 넘기는 경쾌한 손놀림과 티없이 말간 미소를 보면서

               나는 행복하기도 하고 가끔 절망하기도 한다.

               빛나는 그녀들 틈에 앉아 신소리 하는 것으로

               존재감을 드러내는 짓도 쪽팔려 더는 못하겠고

               이러다 불통 꼰대 소리나 듣지 싶어 자괴감이 든다.

               너의 젊음이 노력으로 얻은 상이 아니듯

               나의 늙음도 내 잘못으로 받는 벌이 아니라고(은교/박범신  )... 해본들!

               어느 님은 나이들어 가는 것이 곱다라고 하더만,

               (실제 곱게 나이들어 가시기도 하고)

               내가 나이들어 가는 시간들은 어찌 이리도 불안하고 불편한지.

               불편은 너무도 사실적이고 구체적이어서 참담하고

               불안은 배고픈 사자의 꼬리를 잡고 있는 것처럼 섬뜩하다.

 

               그럼에도 다시 한 번.

               그 푸른 젊음을 헛되이 보낸 것이 결국 네 탓이 아니라 내 탓인 것처럼 

               지금을 즐기지 못하는 것 또한 네 탓이 아니고 내 탓일 것이기에.

               눈에 맞지 않는 돋보기 안경을 버리고 오늘 새로 맞췄다.

               그리고 아껴둿던 예쁜 공책과 필기감 좋은 볼펜을 꺼냈다.

               탈퇴는 조금 더 애써본 뒤에 해도 늦지 않을 것이므로.

 

                전곡성당 내 참게 도서관

 

 

               락도요 선생님의 도자기 작품, 반가웠습니다.

                 여기서 인사드립니다.

                 저 디자인으로 어린이 등가방을 만들면 참 예쁘겠다는 말이 나왔어요.

                 엉뚱하게도 저는 동전이 가득 든 지갑을 떠올렸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