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소한 일상

나를 부르는 아름다운 손짓

타박네 2016. 12. 6. 11:54

            소요산에서 출발하는 10시 3분 인천행 전철에 올라타서야

            점퍼 호주머니 속에 있어야할 휴대폰이 사라졌다는 걸 알았죠.

             실땅님이 급히 전화를 걸어봤지만

             등산배낭이나 내 몸 어디에서도 벨소리는 들리지 않았습니다.

             차안에 떨어뜨린 거 아냐?

             아무래도 주차할 자리 찾아본다고 이리저리 뛰다가 호주머니에서 빠진 거 같아.

             그러게 주머니 지퍼라도 채웠어야지.

             다음 정거장인 동두천역에서 내려 버스를 타고

             부리나케 차가 주차된 소요산역으로 달려왔습니다.

             휴대폰은 자동차 충전기에 연결된 채 차안에 있었어요.

             그 작은 소동의 발단은 아침에 등산 준비를 하면서 시작됐죠.

             만땅 채워놓은 줄 알았던 휴대폰 밧데리 눈금이 간당간당하다는  것을 

             나가야할 시간이 다 되어서야 알았고

             아쉬운대로 두어 눈금 올리느라

             덜 묶인 등산화를 질질 끌다시피 허겁지겁 뛰는 사태가 발생한 겁니다.

             그때부터 뒤죽박죽이 된 거죠.

             사실 통화 목적보다 재미삼아 찍는 사진때문에라도 휴대폰은 꼭 챙깁니다.

             출발하며 차량 충전기에 연결해놓았다는 사실을

             나만 까먹은 건 아니니 그나마 위로가 좀 됩니다만

             단기기억상실증과 유사한 증세로 하루 하루가 정신사납고 위태롭습니다.

           한바탕 난리굿을 한 뒤에 다음 전철을 타고 망월사역으로 갔습니다. 

 

              바위 절벽 사이로 깊게 패인 협곡같기도 하고

               먼 우주 어느 행성의 표면인듯도 싶어 가까이 더 가까이 들여다봅니다.

               오래된 소나무 수피에 수많은 이야기가 겹겹이 쌓였습니다.

               언젠가 작정하고 들어볼 참입니다.

 

 

 

 

            망월사 경내를 둘러보고 포대능선 방향으로 조금 더 올라가보자 했습니다.

              공양간이지 싶은 건물에서 보살님 한 분이 계단을 오르는 우리 일행을 손짓해 부릅니다.

              국수 드시고 가세요.

              아직 따끈해요.

              시간을 보니 1시가 훌쩍 넘었습니다.

              산을 오르며 바위가 좋으니 쉬어 가세,

              유명 산악인이 살았던 집터라니 주변 경관이나 좀 감상하세 하며

              털푸덕 앉을 때마다 배낭 속 간식을 주섬주섬 꺼내먹은 터라 출출하진 않았죠.

              참 간사한 마음이 따끈한 국수라는 말을 듣자마자

              한순간 저를 허기진 인간으로 만들어버립니다.

              하루종일 사막을 걷다가 처음으로 받아든 음식인양 게걸스럽게 먹어치웠습니다.

              정해놓은 공양시간이 지나서인지 국수를 먹는 사람은 실땅님과 저,둘 뿐이었죠.

              진심이 듬뿍 담긴 감사인사를 건네며 등산화 끈을 묶는데

              입가심하라며 귤 하나를 손에 쥐어줍니다. 

              아이고, 이건 뭐 환생한 조상님이 살뜰하게 후손 챙기는 거 같아 몸둘 바를 모르겠더군요.

              배는 포만감으로 무거운데 발걸음은 날듯 가벼웠습니다.

          

            국수 먹고 가라 부르던 아름다운 손 얘기를 하다보니

              얼마 전 우리가 탄 차를 향해 격렬하게 흔들어대던 어떤 남자분의 손이 생각납니다.

              혼잡하던 톨게이트를 벗어나 이제 좀 달려보려 할 참이었습니다.

              고개를 돌려 무심히 보던 옆 차안에서 남자 운전자분이 저를 향해 아래 위로 손을 흔드는 겁니다.

              안색을 보아 댁네가 마음에 드니 어디 가서 커피나 한 잔 합시다 하려는 게 아닌 건 분명했죠.              

              운전을 하던 실땅님이 뭔지 모를 실수를 했구나,

              해서 지금 저분은 우리차를 향해 분노의 삿대질을  하는 중이고

              제가 차창을 여는 순간 듣게 될 것은 원색적인 육두문자일 거라 짐작했습니다.

              못 본 척 했습니다.

              그리고 차는 달렸습니다.

              얼마 뒤 호기심에 다시 고개를 살짝만 돌려 봤습니다.

              그차는 옆 차선에서 계속 따라붙어 달리고 있었어요.

              남자분은 여전히 세차게 손을 흔들고 있었구요.

              더는 무시할 수 없었습니다.

              창을 내리자 커다란 쇳덩어리에 찢긴 바람소리,

              도로를 짓이기는 바퀴소리 사이로 남자의 외침이 들립니다.

              본네트 열렸어요.

              위험하니 닫고 가세요.

              고속도로에 들어서기 전이었으니 망정이지 하마터면 사람 둘 잡을 뻔 했죠.

              달리다가 훌러덩 뒤집혔으면 정말...휴우

              화근은 집 근처 주유소에서 주유하며 벌어진 사소한 실수였습니다.

              뭔가 착각한 실땅님이 본네트를 열었고

              그걸 확인하고 닫겠다며 차에서 내린 저는 뒷 트렁크로 갔죠.

              어라, 분명 열리는 소리가 들렸는데 닫혀 있네.

              그리고는 이상 무,출발!

              털커덕 열린 그 소리가 앞 본네트일 거라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거죠.

              이제 장신구 노릇도 못하는 제 머리는 생각하고 싶은 대로 생각하고

              보고 싶은 것만 보며 본 것만 진실이라 믿나 봅니다.

              사고의 영역이 심각할 정도로 쪼그라들었다는 말이죠.

              지금 느끼는 이 서글픔도 머잖아 희미해지질 겁니다. 

              그때 저를 살게 하는 건 오직 기적뿐이겠지요.

              아주 잠시 스친 인연과 그분들의 따뜻했던 손짓에 감사하며.

           겨우내 즐겨 신는 제 털신과 같습니다.

             들며 나며 신고 벗을 때 이처럼 정갈한 적이 있었던가 돌이켜보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