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동심곡 바다부채길(1월8일)
눈이면 좋았을 테지만 비도 나쁘지 않았습니다.
비는 도둑고양이 걸음으로 진종일 내렸습니다.
묵호수산시장에서 대게찜을 먹었어요.
기대했던 만큼 실망도 컸습니다.
구입한 대게들은 한결같이 다이어트를 어찌나 심하게 했는지
게딱지에 긁어낼 내장 한 점이 없을 정도였거든요.
사실 남 탓할 입장은 아닙니다.
싸고 근사한 걸 바란 우리 도둑심보가 문제였죠.
묵호수산시장을 한바퀴 휘이 돌아보니 대략 시세를 알겠더군요.
발바닥 물집 잡히도록 돌아다니고 입 아프게 물어봤자 그게 그거겠다 싶었습니다.
결국 고무대야 속 살아있는 대게 중 가격 맞춤한 것으로 사자 했죠.
그때 바로 옆 산더미처럼 쌓아둔 이것들이 눈에 띈겁니다.
반에 반도 안 되는 가격표를 달고서요.
뭔가 미심쩍었지만 이런 데선 이렇게 사는 거야,
실땅님의 단호하고 자신에 찬 말 한 마디에 그만 헤까닥 넘어가고 말았죠.
싼게 비지떡이고 물건을 모르겠거든 돈을 더 주라던 조상님 말씀이
그때는 전혀 떠오르지 않았습니다.
다행인 건 가까스로 돈 값어치만큼 게다리살이라도 파 먹을 수 있었다는 거.
굳이 게딱지에 밥 비벼먹겠다고
시커멓게 말라붙은 내장을 벅벅 끍어대던 제이를 생각하면 지금도 웃음이 납니다.
이제 막 사랑을 시작한 것으로 보이는 커플도
우리 옆자리에서 대게찜을 먹고 있었습니다.
남자는 연신 실한 다리를 잘라
눈만 마주쳐도 웃을 준비가 되어있는 여자에게 건네주고 있었죠.
식당 찜솥에 들어가기 전까지 살아있었던 게 분명해보이는 대게들은
점수 좀 따고 싶은 남자의 마음처럼 크기도 합니다.
안 그려려고 하는데도 자꾸 그쪽으로 시선이 갑니다.
스텐대접에 그대로 버려진 이따시만한 게딱지 두어 개만 집어와 제이에게 주고 싶었거든요.
집으로 돌아오는 길, 차 안에서 참았던 그 말을 기어이 하고 말았죠.
한 번 터진 웃음은 쉽게 그치지 않았습니다.
씁쓸하고 민망했던 묵호항에서의 시간들을 그렇게 털어버리고 왔습니다.
묵호에서 뺨 맞고 비천골에서 위로받았습니다.
언제 가도 푸근하고 정겨운 곳이죠.
문을 열고 들어서자마자 고구마 익는 냄새가 먼저 달려나옵니다.
장작난로,조금 특별한 커피,예쁜 커피잔,꽃과 오래묵은 인연 연두.
환상의 조합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