텃밭일기

텃밭일기 10

타박네 2017. 7. 12. 00:46

 

         장마 전후 후텁한 이 즈음이면 후회와 자책이 절정에 이릅니다.

             일과 놀이, 두 마리 토끼를 쫒다가 

             결국 죽도 밥도 아니게 된 것같은 상황과 직면하는 때죠.

             꼬부라지고 뒤틀려 허리 잘록해진 오이,

             나무처럼 자라 더이상 먹을 수 없을 지경인 상추,

             하룻밤 사이 사라져버리는 담장 밖 호박들...

             새로 뿌린 씨앗들은 더디 자라고

             인정머리 없는 풀들만 악몽처럼 솟아오르는 계절.

             풀들에 포위당한 백일홍이며 양귀비꽃을 볼 때면 으으~ 순간 섬뜩합니다.

             수확할 때 다된 벼처럼 자란 풀밭 속으로 걸어 들어가자면 용기가 필요하죠.

             풀숲에서 뭐가 툭 튀어나올 것만 같아서요.

             물론 그게 초식공룡이거나 호랑이는 아니겠지만요.

             너무 써서 이제는 무디어진 낫을 꽉 움켜쥐면 임전무퇴 전의보다

             한숨이 먼저 튀어 나옵니다.

             내가 지금 무슨 짓을 하고 있는 건지...참...미치고 환장할 노릇입니다.

             며칠 전, 신들린 듯 낫을 휘두르며 밭고랑을 전진하다가

               바닥에 나뒹구는 살구 대여섯 개를 보았습니다.

               어떤 인간이 못 먹을 걸 밭에 던지고 간 줄 알고 이런 써글~ 부아가 치밀었죠.

               종종 있는 일이거든요.

               헌데 줍고 보니 말짱한 겁니다.

               앉은 자리에서 두리번 거리다 고개를 드는 순간,노랗게 농익은 살구들이 똬악!

               옴마야! 니가 살구나무였냐?

               뭐가 뭔지도 모르고 주워다 심은 나무들이 솔찮긴 했지요.

               뜰보리수처럼 이녀석도 뭘 좀 달고 있으니 겨우 알아봅니다.

             슬그머니 낫을 내려놓고는 땅바닥에서 주운 살구를 수돗물에 씻어 먹었습니다.

               당분 효과인지 시름이 좀 덜어지는 듯 했죠.

              거의 대추알만한 땀방울을 후드득 떨어뜨리면서 퍽퍽 낫질을 하고 있는데

                오늘도 어김없이 골목을 지나시던 어르신이

                오늘도 어김없이 한말씀을 울타리 안으로 던지십니다.

                베면 뭐해, 금방 다시 자랄 텐데.

                일순 팽팽하던 근육에서 힘이 쭉 빠져나갑니다.

                그래도 이러면 안 돼죠.

                마음을 다잡습니다.

                자라나오면 또 베죠 뭐.

                저 백수라 시간 많아요.

                머리 속에서부터 흘러내린 땀이 눈 안으로 들어간 김에 울고 싶어집니다.아흑~ 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