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소한 일상

죽기 살기로 떠난 여행(10월31일~11월10일)

타박네 2017. 11. 21. 16:29

  전화위복과 같은 뜻을 가진 샐리의 법칙은 제 인생에서 좀처럼 찾아보기 힘듭니다.

  일테면 복 있는 년은 넘어져도 하필이면 가지밭이더라 하는 것과 같은 말이기도 합니다.

  그대신 자빠졌는데도 코 깨지고 엎어지면 개똥에 코 박기 일쑤인 머피의 법칙,

  이게 제 단골 손님이죠.

  이번 열흘간의 캐나다 미국 여행도 예외는 없었어요.

  불길한 예감은 늘 예감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본래 조금 비관적이고 염세적인 성향 탓일 수도 있을 겁니다.

 

  손바닥만한 텃밭에서 비롯된 화근이 끝내 즐거워야할 여행길에 찬물을 끼얹고 말았습니다.

  징징거리지 않으면 귀신조차 모를 어깨통증을 친구인양 달고 산지 일 년쯤 되었을까요?

  병명은 그닥 심각하지 않은데 체감 통증은 삶의 질을 너덜너덜하게 만들기 충분할 정도입니다.

  구체적으로 여행 일정이 잡히자 마음이 다급해졌습니다.

  기대와 설레임에 앞서 더럭 겁부터 났습니다.

  9박 10일...

  방구석과 동네를 떠나 견딜 수 있는 객지 잠 마지노선 이삼일을 한참 넘어서는 시일입니다.

  알러지 폭탄도 피해야지 숙면을 취하자면 어깨통증부터 어느 정도는 해결해야지,

  캐리어에 근심부터 먼저 한짐 싸게 된 판국이었죠.

  이때부터 길거리에서 만나는 지인들,

  특히 어르신들을 붙잡아 세워놓고 어디 어떤 치료가 용하던가요 묻기 시작했습니다.

  팔랑대는 귀 꼬임에 빠져 병원 투어를 다니는 일부 어르신들을 흉보면서도 어느 틈에 배운 모양입니다.

  한 가지 질병에 참 다양한 의료기관,치료법이 쏟아져나오더군요.

  우리 실땅님이 근무하는 정형외과 한 곳만 디립따 파던 일편단심을 버리고

  도둑고양이마냥 살금살금 돌아다니기 시작했죠.

  그 중 하나만 걸려라! 이거였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나쁜 운 하나가 걸려든겁니다.

  얻어걸렸다는 것이 하필이면 설상가상,

  혹 떼려다 더 큰 혹 하나를 떠안게 된 꼴이 되고 말았습니다.

  어깨뿐만 아니라 목과 어깨 오른팔에 이르기까지 통증 부위는 확대되고 더욱 악화됐습니다.

  고문 기술자처럼 팔을 돌려 꺽고 눌러대는 도수 치료라는 게

  상처에 소금 뿌린 격이 되고 말았던 거에요.

  앓느니 죽는 게 나을까 싶더군요.

  결국 가급적 움직이지 말고 손도 쓰지 말라는 처방이 내려졌습니다.

  가뜩이나 공주병에 왕관 하나 더 얹어 쓰고 드러눕고 말았습니다.

  차곡차곡 날은 다가오는데 좀처럼 나아질 기미는 보이지 않으니 미치고 팔딱 뛸 판이었죠.

  이대로 출발했다가는 내 아픈 사정은 둘째치고

  함께 여행길에 오를 일행에 민폐녀로 등극할 가능성만 높았거든요.

  다시 돌아간 실땅님 병원,여전히 아파요, 어제보다 더 아파요,애 낳는 것보다 더 아파요...

  꽃노래도 이정도면 질리긴 할겁니다.

  듣다못한 원장님이 간곡하게 말씀하시더군요.

  아프다는 생각을 하지 말라고, 생각을 하면 더 아프다고,

  안 아프다는 게 아니라 생각할수록 더 아플 수는 있노라고.

  그게 아니구요 선생님,생각이 나서 아픈 게 아니라 아프니까 자꾸 생각에 빠지는 거라니까요.

  이루지 못한 첫사랑 얘기가 아닙니다.

  어디에서 뺨 맞고 와 엉뚱한데서 억울함을 호소하는  환자와 의사선생님의 대화내용입니다. 

  결국 대학병원을 찾아 정밀검사를 의뢰해 놓고는 고행길에 올랐습니다.

 

  사실 출발 전날까지 취소해야 하나 말아아야 하나 심각하게 고민했습니다.

  만만찮은 여비는 기꺼이 포기하겠는데

  언니 온다고 좋아라 하는 우리 막내동생 생각을 하니 도저히 그럴 수가 없었죠.

  마침 여행 일정에 뉴욕이 포함되어 있어 근처에 사는 동생을 만나기로 했었거든요.

  이런 저런 사정으로 동생 얼굴 못 본 지 십 년이 넘었습니다.

  제겐 아픈 손가락같은 동생입니다.

  엄마 돌아가셨을 때 열 살도 채 안 됐을 겁니다.

  당시 우리 집 잔치한다고 제 친구에게 말하더라는 소리를 이웃 아주머니에게 전해 들었죠.

  엄마의 마지막 눈물보다 그 말이 두고두고 더 뼈아팠습니다.

  인터넷 덕분에 옆집 사는 듯 소식 주고 받으니 그런가보다 하며 살다가도

  불현듯 보고 싶을 때가 종종 있어요.

  그때가 이때였습니다.

  이미 우리 일행이 묵게될 호텔에 예약도 마쳤다며 한껏 들뜬 동생 목소리를 듣고 나서 마음을 굳혔죠.

  목적을 관광이 아닌 혈육상봉에 맞추자 없던 용기가 좀 생기더군요.

  알러지 폭탄 제거용 비상약은 지갑 속, 가방마다 묻어두고 아침 저녁 먹는 진통소염제 한 보따리,

  추가로 처방받은 초강력 진통제 한 병,각종 파스,허리 보호대까지 챙기면서

  이게 뭐하는 짓인가 싶어 씁쓸한 웃음이 났습니다.

  전투에 임하는 병사처럼 비장하기까지 했죠.

  까짓,설마 죽기야 하겠어? 

 

  귀신 잡는 해병, 사람 잡는 설마!

  설마하던 상황은 토론토 국제공항에 발을 딛기도 전에 일어났습니다.

  미리 복용해보고 이상증세가 없다는 걸 확인까지 한 진통제 때문이었죠.

  식은땀이 흐르고 호흡이 가빠지더니 급기야 정신이 아득해지는 겁니다.

  약물쇼크였어요.

  이대로 죽나보다 했습니다.

  높은 하늘에 둥둥 떠있다 죽으면 하늘나라 가는 길도 더 가까웠을까요?

  작은 소란은 금새 진정되었습니다.

  승무원들의 능숙한 응급처치와 보살핌 덕분이었죠.

  매시간 혈압 채크하고 옆 좌석을 비워 남은 시간 내내 누워 갈 수 있도록 배려해주신 것도 고마웠습니다.

  여행사에서 미리 신청해준 채식 기내식을(기대가 컸습니다^^) 제대로 먹어보지 못한 건 아쉬움으로 남지만

  휠체어에 의지하지 않고 두 발로 걸어 나갈 수 있었던 것만도 휴우~~ 천만다행이었어요.

  꼬박 열세 시간을 날아 도착한 토론토의 하늘은 제 심정처럼 먹장구름으로 가득찼습니다.

  하늘빛조차 그 꼬라지니 우울, 원 플라스 원이었죠. 

  공항을 벗어나 코끝 아리도록 차가운 바람을 한모금 깊이 들이키자

  오뉴월 개 혓바닥처럼 축 늘어졌던 신경줄이 팽팽하게 잡아당긴 현처럼 쨍! 소리를 냅니다.

  괜찮냐고 묻는 남편에게 씨익 웃으며 말했습니다.

  나 완전히 살아났어.

 

  그리고 여행 첫 코스인 나이아가라 폭포 앞에 섰습니다.

 

 

 

 

 

 

 

 

 

 

 

 

 

 

     쉐라톤 호텔에서 바라본 폭포 전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