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소한 일상

할까 말까 고민하다가~

타박네 2018. 4. 6. 21:07

 

하기로 했다.

블로그.

2009년 시작했으니 올해만 지나면 십 년이다.

잡다한 일들로 종종 거리던 하루 일과를 마친 늦은 밤,

컴퓨터 전원 스위치를 켤 때면 기분이 좋았다.

거미줄처럼 엮인 이러저러한 인연의 끈을 잠시 내려놓고

비로소 나와 대면하는 시간은 홀가분했으며

내가 보고 사랑한 것들을 차곡차곡 채우는 과정은 적금통장 만큼이나 뿌듯했다.

가끔 지랄맞은 권태의 수렁에 빠져 내가 지금 무슨 짓을 하는 거지?

무슨 의미가 있긴 한 걸까?

이런 따위의 물음표를 붙들고 씨름하는 날들만 없다면

블로그 마당은 대체로 즐거운 놀이터였다.

십 년,변한 건 아무것도 없지만 습관이 되기에는 충분한 시간이었다.

습관은 참 집요하고 무섭다.

잊기에 충분한 세월이 흘렀음에도 문득문득 찾아와

대문 쪽문 모두 닫아걸은 집 휘이~ 둘러보고 가시는

오랜 벗님들께 죄송한 마음이 크다.

 

하기로 했다.

바느질.

끝내 미련이 남는다면 끝을 봐야한다.

작은방에 쟁여놓은 색색의 천들과 실과 바느질 도구들.

수 년째 버리지 못하고 끼고만 살았다.

하자니 고달프고 남 주자니 아깝다.

내게 가치를 상실했거나 넘치거나 불필요하다 싶으면

가차없었던 버리기 내공이 작은 방에는 통하지 않았다.

날 잡아 결심한 것은 아니나 지난 해 말부터 마음을 다잡기 시작해

새해들며 바늘을 다시 잡아봤다.

귀 큰 바늘에 굵은 실을 꿰어 꽃을 만들고 잎을 수 놓았다.

엉성하지만 뒤늦은 첫술이라 그러려니 스스로 위로한다.

마침내 배 부를 날이 오려는지

그나마 들던 숟가락 냅따 던져버리고 꽃구경 유람이나 다니게 될런지...

될 대로 되겠지.

 

 

말기로 했다.

새 카메라 구입.

소니 미러리스 카메라를 구입한 건 7년 전.

복잡하거나 거추장스러운 걸 좋아하지 않으니 고민 없이 결정한 카메라다.

셧터 작동 불능으로 남대문 AS센터에 한 번 다녀온 것 외에 별 탈 없이 참 잘 썼다.

얼마 전 퍽 소리와 함께 숨이 끊어지기 전까지 말이다.

짬을 내어 수리를 맡기러 가긴 하겠지만 굳이 서두르고 싶지는 않다.

지난 주 광덕산 꽃소풍을 가며 휴대폰 하나 달랑달랑 들고 가니 어찌나 편하고 좋던지.

저것도 은근 힘키는 물건이었구나 싶었다.

꼴난 사진 찍겠노라 허비하는 시간이 줄자 꽃놀이가 한결 여유로웠다.

어쭙잖게 연장 들고 쏘다니는 거, 내 스타일 아닌 건 확실하다.

간지좔좔까지는 아니더라도 뭐 좀 그럴싸한 카메라 하나 장만할까 하고

붓던 곗돈 타 마음에 담아두기만 했던 코트 한 벌 샀다.

덕분에 지난 겨울이 따뜻했다.

올 겨울에도 코트 한 벌이 늘어난다면 새 카메라는 또 물 건너 가는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