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씨구 절씨구~
노랑참나리가 꽃을 피웠다.
폭염이 무서워 한 사나흘 못 들여다본 사이 벌어진 일이다.
원예용으로 시중에 나온 것이라면 모를까
자생지에서는 거의 사라져 멸종 위기에 처한 것으로 알고 있다.
벌써 삼 년 전이다.
텃밭농사를 시작하던 그해 가을,
꽃동무 한 분이 이 노랑참나리 씨앗을 주셨다.
작은 화분에 따로 심어 싹을 틔운 뒤 화단에 심었어야 하는데
곧바로 밭 한켠에 묻어버렸다.
후회는 되었지만 야생 유전자의 강인함을 믿었다.
씨앗을 묻어둔 자리는 참나리 바로 옆이었다.
해마다 봄이면 올라오는 뾰족한 잎들 중에
뭐가 이거고 뭐가 저건지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그리고 삼 년만에 분명해졌다.
지금은 자주 뵐 수 없는 꽃동무님,감사합니다!
본격적으로 수확기에 접어든 오이와 가지는 어찌나 많이 달리는지
이고 지고 오느라 죽을 맛이다.
어쩔 수 없이 오는 중간에 아는 집에 들어가 덜어내고 왔다.
완전 어깨 빠질 뻔!
차를 가져갔으면 문제가 안 되었겠지만 며칠 전 다친 꼬리뼈 때문에 당분간 운전금지.
리어커라도 한 대 장만하던가 해야지 원...
오늘은 여기!
장화로 갈아신고 고무장갑 끼고 허리에 보호대까지 착용했다.
전투에 임하는 병사처럼 제법 비장했다.
풀밭에 발을 들이미는 순간,
어우야,무섭다.
뱀이 아니라 커다란 짐승이 숨어 있어도 모를 판국이다.
저 강아지풀 크기가 어찌되냐면 내가 낫을 들고 앉았을 때 완벽하게 안 보일 정도.
아이고 옘병, 이게 익은 벼라도 되면 얼마나 신날까마는...이러면서 차곡차곡 베어나가길 한 시간.
풀무덤 하나가 생기면서 라일락 두 그루가 광명을 얻었다.
손바닥에 물집이 생겨 쓰라리지만 아직 기운은 남았으므로 좀 더 전진할까 하다가
이쯤에서 멈추기로 했다.
어제보다 병아리 눈꼽만큼 덜 덥다고는 하나 아직 재해수준의 더위가 계속되고 있다.
공연히 욕심 부리다 밭고랑에 코 박고 쓰러지기라도 하면 '드럽게 말도 안 듣는 꼰대' 소리와 함께
욕만 바가지로 얻어 먹기 십상이다.
그나저나 무슨 수를 쓰긴 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