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생화와 풍경

내산리 임도,자주사위질빵

타박네 2018. 9. 10. 19:57

  내산리 임도 어디쯤에 홍도까치수염이 피고 진다는 소식을 접한 건 몇 해 전이다.

  산길 어디에서나 쉽게 만날 수 있는 큰까치수염과 무엇이 다르기에

  상대적으로 귀한 대접을 받을까로 시작한 궁금증은

  해를 지나며 상사병 비슷하게 변질됐다.

  올해는 꼭 만나봐야지 했지만 매번 그 시기를 지나쳐버렸다.

  그때마다 아쉬움의 덩이는 그리움같은 걸 덧붙이면서 눈덩이처럼 커졌다.

  그것은 마치 절대 현실이 될 수 없는 짝사랑이거나 환상의 섬 이어도 같았다.

  사실 각별하게 홍도까치수염을 좋아하는 건 아니다.

  너무 좋아서 못 보면 죽을 것 같은 것 역시 더더욱 아니었다.

  그저 거기 있다니까, 못 갈 곳도 아니라니까.

  그런데 뭐가 이리도 어려운 것이냐.

  임도 왕복 25km를 걸었다.

  머리카락처럼 가는 선 어느 지점 동그라미친 위성사진 한 장으로

  자생지를 쉽게 찾을 수 있을 거라 생각하지는 않았다.

  내 인생 통들어 확률 제로에 가까웠던 행운이

  이번에는... 어쩌면...저도 양심이란 게 있다면...

  옜다! 이거나 하나 먹고 떨어져라 하고

  무식하게 굽이굽이 길을 걷는 우리에게 툭 던져 줄 수는 있을 거라

  아주 소박한 기대는 했었다.

  

  몇 해 전이었다.

  동네 마트에 경품행사가 있었다.

  1등 상품이 무려 김치냉장고.

  전단지에 실린 김치냉장고 사진을 보자 견물생심,

  지금도 없지만 당시도 없었던 김치냉장고가 느닷없이 탐나는 거다.

  평소 요행이나 운을 바라는 모든 행위를 경멸하던 나는

  또 느닷없이 운에 매달리는 열성신도가 됐다.

  일정 금액 이상이 되면 주는 경품권을 받기 위해 라면이나 세제를 사 모으기도 했다.

  우리 집에 김치냉장고가 들어오기를 바라는 사람은 나 뿐만이 아니었다.

  남들 두 세대 있다는 그 흔한 거 하나 없느냐 혀를 차던 지인들에게

  이번 행사는 호의를 베풀 좋은 기회였다.

  그들의 경품권은 모두 내 손으로 들어왔다.

  그렇게 모아준 게 모두 합쳐 백 장이 넘었다.

  경품 추첨 전날,손가락에 쥐가 나도록 이름과 연락처를 적었다.

  플라스틱 투명 상자에 경품권을 쏟아붓고 오던 날

  이번에는...어쩌면...참 즐거운 상상을 했었다.

 

  되돌아 가야하는 길이 아득해 그만 멈춰섰던 자리에서 발길을 돌릴 때

  문득 김치냉장고가 생각나고 웃음이 나고 그럼에도 조금 신도 났던 것은

  늘 그랬듯 주연보다 더 빛났던 조연들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홍도까치수염 보자 떠났던 그 길에

  축복처럼 흐드러졌던 물봉선과 닭의장물과 수까치깨...

  그것들로 이미 나는 너무나도 행복했으므로.

  김치냉장고는 커녕 화장지 한 통 못 건진 경품행사였지만

  지금도 그 얘기 하면서 한바탕 웃을 수 있는 그때 그 사람들이 아직도 곁에 있듯이.

  특별할 것 없으나  내게는 무척 특별한 그들과 그 꽃들이 있어

  오늘도 행운결핍자인 내 생의 한 조각이 반짝하고 빛이 났다.

  고맙습니다!

 

  임도를 걷기 전 무릇 군락지에 먼저 들렀다.

  여기서 새로 구입한 중고 카메라 성능을 테스트 해보기로 했다.

  정말이지 뭐가 뭔지 모르겠다.

  아무렇게나 막 눌러봤다.

  여간 불편한 게 아니다.

 

 

  낙지다리가 벌겋게 익어가는 습지

  똑딱이보다 못한 사진에 실망~

 

  세어보진 않았으나 언듯 백 송이는 충분히 넘어 보인다.

  씨앗이 잘 여물면 수확하러 가야겠다.

  꽃이 피었을 때 얼마나 장관이었을까는 머리 속에 그리는 것으로.

  내산리 임도 초입.

  제일 먼저 물봉선이 달려나와 반긴다.

  고맙기도 해라.

  내 곱게 담아보마.

 

 

 

 

  아, 너무 좋아서 비명같은 감탄사를 연거푸 쏟아냈다.

  파르스름한 꽃잎부터 노란 수술까지 뭐 하나 빠지는 데가 없잖아.

  볼수록 매력적인 거,쁜 거 인정!

 

 

 

 

 

  연습은 딱 여기까지.

  답답한 마음에 이것 저것 눌러보다 그만 아주 이상하게 돼버렸다.

  더이상 쓸 수가 없게 되자 카메라는 무더기만 큰 미련한 물건으로 보인다.

  가방 안에 던져넣고 가뿐하게 폰카질을 시작했다.

  이게 내 스타일이지.^^

 

  넌 누구냐?

  자주조희풀 근처에서 만났다.

  어랏?

  자주조희풀이 흰색도 있었나?

  꽃봉오리는 영락없이 자주조희풀인데

  덩굴을 뻗은 모습은 사위질빵과 비슷해보인다.

  혹시...그 둘의 은밀한 만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