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이 되어버린 연강나룻길
주차장 근처에서 개 두 마리가 여기저기 영역표시를 하며 돌아다니고 있었다.
유기견들인지,주인이 있는 개들인지 모르겠어서 마음 편히 욕도 못하겠다.
너희들이 무슨 잘못이겠냐.
발로 꽉 움켜쥔 무엇을 뜯어 먹고 있는 중이다.
뒷태가 예뻐서 찍어봤는데 이름을 몰라 불러주지 못했다.
미안,짹짹아!
이제 이 산책길은 특별한 것 없는 일상이 되었다.
부드럽게 굽이진 흙길과 사납지 않은 오르막 내리막길,사방이 탁 트인 능선길,
걸을 수록 고마운 길이다.
문제는 이곳에 찾는 두루미들이다.
두루미들의 주 서식지는 횡산리 빙애여울이어서 대부분 그곳에 터를 잡고 겨울을 난다.
낮시간 여기서 머무는 건 강의 저쪽과 이쪽을 모두 합쳐 스무 마리 안팎이다.
우리 산책은 종종 두루미 가족의 한가로운 식사 시간을 방해하곤 한다.
다급한 비명과 날개짓을 볼 때마다 마음 한켠이 불편하다.
그 불편함은 결국 미안함이다.
본의가 아니라 해서 미안함이 덜하지는 않다.
십리 밖에서 우리가 숨만 쉬어도 알아챌 거라며 두루미들의 예민한 감각을 탓하기도 한다.
하지만 어쩌랴, 저 두루미들 만큼 우리도 여기가 좋은데.
대신 두루미들이 자주 보이는 율무밭 근처를 지날 때는 각별히 신경을 쓴다.
길모퉁이 너머 뚜루뚜루 소리가 들리기라도 할 때는 최대한 몸을 낮춰 걷기도 한다.
가끔은 들키지 않고 산책을 마치는 날도 있다.
개안마루 옆 율무밭에 수확하지 않았는지 못했는지
열매가 그대로 달린 율무가 듬성듬성 있다.
그리고 여기선 단 한번도 두루미를 만난 적이 없다.
그렇다면... 이건 좀 아까운 걸?
그대로 세워둬봤자 바람에 삭고 썩고 하기 밖에 더 하겠어?
배를 곯아본 적 있는 나는 다른 건(영혼의 허기 뭐 그런거) 몰라도
배 고픈 남의 사정 짐작은 잘한다.
월백 설백 천지백, 눈 덮힌 연강길 그 숨막히게 아름다운 절경과 함께
먹이를 찾느라 눈밭을 파헤치는 두루미들의 고단한 두 발이
짬짜면처럼 묶여 생각으로 떠오르던 참이었다.
며칠 전부터 폭설 대비용으로 율무를 좀 사둬야 하지 않을까 했었다.
그렇게 율무 이삭줍기를 시작했다.
카사장과 나는 낱알을 따 비닐봉지에 담고
실장는 어느 천년에 한알한알 따 모으냐며 줄기채 툭툭 꺽었다.
어느 정도 따고 꺽은 뒤 남은 건 발로 밟아 눕혀놓았다.
혹시라도 이곳을 찾아오는 두루미가 있을 지도 모르니.
길에서 조금 떨어진 오목하고 아늑한 율무밭,
늘 예닐곱 마리의 두루미들이 모여 있는 곳이다.
가지고 온 걸 뿌리며 보니 탈곡하고 버린 더미 안에 율무 알갱이들이 제법 많다.
이곳을 찾는 수가 많지 않아 그 정도만 해도 겨울 나기에 충분해 보였다.
다행이다.
물먹으러 왔을까?
근처 웅덩이에 발자국이 어지럽다.
'혹시라도' 하던 말이 땅에 떨어져 고물 묻을세라 냉큼 날아온 두루미들.
우리가 따고 꺽던 율무밭이다.
가까이 하기엔 너무 먼 당신,
그립던 님 꿈에서 만난 듯 능선 위에 쪼그려 앉아 바라보았다.
하염없이,
왼쪽 하늘이 불그레 물들 때까지.
젠장,하마터면 동사할 뻔 했다.
외사랑은 내 스타일 아님.
그나저나 다음엔 저 비닐끈들이나 치워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