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강나룻길

일요일은 연강나룻길

타박네 2021. 1. 18. 18:33

매일 조금씩 늘어나는 해의 길이 만큼 더 머물게 된다.

늘어난 시간을 채우는 건 일도 아니다.

별일 없으면(별일 없는 게 별일인 요즘)일요일엔 연강길을 걷는다.

 

이번엔 리본이다.

등산로를 표시하는 색색의 리본이 마음을 끌었다.

산길 초행인 사람에겐 이 리본 한 조각이

바닷가에서 불 밝히고 선 등대인 셈이다. 

이 길이야 사방이 훤한데다 이정표도 잘 설치되어 있어

헷갈릴 걱정은 안 해도 된다.

하지만 아주 드물게, 나같은,

길을 익히자면 적어도 열 번 이상은 가봐야 아,이제 좀 알겠네라며

고개를 주억거릴 여유를 갖는 악성길치가 있기 마련이다.

차와 사람들이 뒤섞여 다니는 대로도 아니고

첩첩산중에서 길을 놓치거나 갈림길을 만나면

철렁 가슴부터 내려앉는데 그럴 때 눈에 띄는 리본 하나는

사무칠 만큼 고마운 존재다.

연강길은 누가 봐도 뻔한 길이고 샛길 또한 거의 없는지라

어쩌다 시건방으로 가득찬 나는  

저 노스탤지어의 손수건처럼

제 온몸을 흔들어 반기는 리본따위에 일별조차 한 적이 없었다.  

그런데 그 날, 저것이 보였다, 자꾸.

 

 

 

 

지난번 산책을 마치고 돌아와 신발을 벗자마자

커다란 비닐봉투 하나를 찾아 배낭에 넣어뒀었다.

생각이 머리 속에 머무는 시간이 날이 갈수록 짧아져

곧바로 실행하지 않으면 처음부터 없었던 일이 되고 만다. 

카사장에게 봉지를 건네주고 사진 몇장 찍으니 끈들은 거의 다 치워졌다.

인사치레로 남은 걸 조금 줍고 마무리 했다.

콩밭이나 길가에도 비닐류의 쓰레기가 넘친다.

하지만 그건 농사 짓는 분들이 해결할 문제고

우리는 일단 두루미들이 머물다 가는 율무밭 쓰레기만 치웠다.

 

 

 

 

 

앗,사람이다.

님아, 그 강 건널 수 있는 거요?

 

두 사람이 꽁꽁 언 강을 건너고 있고 한 사람은 건너 자갈밭에 서성이고 있었다.

인근 동네 주민들이지 싶다.

강을 모르는 객지 사람들은 섣불리 건너지 않는다.

개안마루에서 두루미 보기는 틀렸군.

겁 없이 빙판 산책을 즐기는 사람들을 보며 부러움 반 원망 반.

아니나 다를까,한바퀴 휘이 돌더니 마을쪽으로 사라졌다.

 

 

 

 

연천 농협마트 입구에서 팔고 있는 군고구마를 샀다.

가끔 장을 보러 갔다가 달큰한 향기의 유혹을 떨치지 못하고

군고구마를 먼저 집어들곤 하는데

그바람에 사려던 대파나 달걀 따위를 까먹고 돌아와 실소 하기도 한다.

벌써 오래된 얘기지만 귀가가 늦어 변명거리를 찾아야할 때 남편은 군고구마 사들고 왔다.

뭐 그 정도면 살인, 공갈사기, 기타 파렴치한 범죄 말고는 용서 못 할 이유가 없었으니까. 

잘못 건드리다가 찔리면 중상을 면하기 힘든 대쪽같은 자존심에도 불구하고

자다 말고 일어나 좋다고 헤벌쭉 고구마 봉다리부터 받아든 걸 보면 쓸게는 좀 빠졌었던 듯.

그러고 보면 누구에게 겨울은 참 좋은 계절이었겠다.

아무튼 여기 군구마가 정말 맛있다.

맛있는 음식과  근사한 장소와  좋은 사람들의 조합.

더 말하면 입만 아플 뿐이다.

 

 

 

 

 

 

 

 

 

 

 

내 기척에 놀란 고라니가 냅따 뛰더니 아예 강을 건너 갔다.

신기한 건 그러거나 말거나 근처에 있던 두루미들이 신경도 안 쓴다는 것.

찌익~ 미끄러져 가랑이 찢어질 뻔 ㅋㅋㅋ

니들 동물 차별하냐?

참호로 쓰던 곳 같은데 지금은 방치된 채 있다.

앞면만 빼고 흙으로 싸여 있어 내부는 의외로 따뜻하고 아늑하다.

폐가나 이런 흉물스런 움막만 보면 네 집 하면되겠다고 말하는 실장.

말들은 김에 들어가 봤다.

방탄문만 달면 그런대로 쓸만하고 살만하겠다. 

전망도 끝내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