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강나룻길
격세지감
타박네
2021. 2. 12. 18:51
올 설은 각자 집에서 보내라는 큰형님의 전화를 받았다.
거실 바닥에 신문을 깔고 앉아
반나절 전을 부쳐야 하는 나로서는 두 손 두 발 들어 환영이다.
한 해 여섯 번의 조상님 제사와 두 번의 명절 차롓상까지 거뜬,
아무런 불평없이, 지극정성을 다하셨던 큰형님의 목소리가 가벼워
듣는 내 마음조차 작은 짐 하나를 내려놓은 듯 홀가분했다.
넘어진 김에 엎어졌든 자빠졌든 그대로 잠시 쉬어가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설 전날, 딸과 사위가 바람처럼 다녀갔다.
덕분에 설날 당일,
아침 일찍 부모님 산소에 다녀온 남편을 살살 꼬드껴 연강길을 걸을 수 있었다.
맛있는 바깥 음식을 먹고 들어온 날 남편은 항상 다음에 '거기' 같이 가보자 한다.
물론 대부분 산나물이나 콩요리 전문 식당이다.
가든 안 가든 상관없이 나는 감동한다.
맛있는 음식을 보며 생각해줘서 고맙고 먹이고 싶어하는 그 마음이 또 고맙다.
그럴 때면 사랑이 뭐 별거더냐 싶기도 하다.
합쳐놓은 둘의 인생을 화롯불로 치자면
남은 불씨로 된장 뚝배기 하나 겨우 데울 미지근한 지경에 와 있지만
그 정도면 오던 길에 이어 남은 길도 기꺼이 더 가 볼 만하다 여긴다.
남편이 풀반찬을 볼 때 내 생각을 하는 것과 같은 이유로
가끔 연강길을 함께 걷자 권하곤 한다.
자기가 뭐 제갈량이라고 서너 번 거절한 뒤 마지못한 듯 한 번 따라나선다.
나비처럼 날아다니는 나와 대조적으로 남편의 발걸음은 더디고 무겁다.
평생 뒤를 따라다녔는데 살다보니 내가 앞장서는 날도 다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