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강길 12월 (3)
전날 밤 눈이 내렸다.
비록 가벼이나마 쌓인 눈은 아침 햇살이 퍼지기 무섭게 녹아내렸다.
해서 연강길의 설경은 기대하지 않았다.
아니, 기대할 수 없었다.
이 둘은 분명 차이가 있다.
엄밀히 말하면 후자다.
확대해 보니 고라니 발자국
오늘의 간식, 크림치즈 스콘과 치즈 쿠키.
실장님에 대한 배려로 설탕 함량을 대폭 줄였다고.
커피 디저트는 좀 달달해야 하는 내 식성은 무시당했지만
서운해할 틈도 없이 입안 가득 퍼지는 기분 좋은 향기.
재료에 늘 진심인 카사장.
그럼에도, 죽어도, 목에 칼이 들어와도 본인이 만든 건 먹고 싶지 않다는 카사장을 위해
동네 마트에 들려 크리미빵을 한 봉다리 샀다.
자기 동네 가게엔 없더라며 이 빵을 하나 사달라기에 귀를 의심했다.
먹어 본 기억이 백 년도 더 된 것 같은 그 빵이 아직 팔리고 있다고?
단박 그렇다고 한다.
정말이었다.
그것도 계산대 바로 옆 진열대에 수북 쌓여 있었다.
예전에 비해 크림이 줄었다며 아쉬워했지만 카사장,참 달게도 먹는다.
콩밭에 도착했다.
게임 끝!
둘의 이삭 줍기는 끝날 줄 모른다.
그만 가자고 볶아대니 귀찮은 물건 쫓아내듯 저리 가서 놀으란다.
허허벌판에서 뭐 하고 놀으라고?
건너편 율무밭에 있는 두루미 한 번 찍고 가끔 허공을 가로지르는 기러기떼를 향해 분노의 셧터질 좀 하다가
콩밭에 코를 박고 있는 실장과 카사장을 번갈아 찍으며 억지로 놀았다.
그러다 결국 해 넘어갔다.
이제 나는 '의지'라는 단어의 뜻을 사전적 의미와 달리 해석하게 되었다.
의지, 북풍 넘실대는 한겨울 콩밭에서 해 저무도록 이삭을 줍는 것.
하마터면 기도할 뻔.
저녁 종이 울리지 않았기에 망정이지.
율무밭 두루미들도 집으로 돌아가는 시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