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 먹어도 배 부르네
여름이다.
요즘 같아선 양산 없이 30분만 길거리를 쏘다녀도 뇌수가 부글부글 끓는 것 같다.
이럴 때쯤 읽어줘야 하는 게 바로 추리소설.
음습하고 괴기스럽고 오소소 소름 돋고 머리카락이 쭈볏 서는 이야기는
아무래도 여름이라야 제격이다.
구독하고 있는 신문에 소개된 것들 중
나름 엄선해 구입한 추리소설 세 권과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신간 두 권
그리고 오늘 '행복한 사람'이 수제비 한 그릇 먹으러 오면서
선물로 주고 간 황석영의 '강남몽'.
읽기도 전에 배 부르다.
곳간 가득 쌀이 넘치고
장농 깊숙한 곳에서 금돼지들의 합창소리가 울려 퍼지는 것처럼
갑자기 부자가 된 기분.
기분만 그렇다는 것이지~
사실 확성기로 가족의 이름을 불러야 할 만큼 드넓은 집에
금고 안 가득 금괴를 채워두고
손가락만 까닥하면 램프의 요정 지니처럼 튀어나와
주인님~하며 머리를 조아리는 사람들을 거느린
부자들의 삶과 기분이 어떨지 내가 어찌 알겠는가.
다만 짐작컨데 금값이나 땅값 폭등이라는 뉴스를 들으며 느끼는 그들의 감정이
지금 이 순간의 나와 비슷하지 않을까~싶은 정도?
곱게 자란 부잣집 마님의 한끼 굶은 고통이나
어제도 굶고 오늘도 굶고 내일도 굶을 수 밖에 없는 제3세계 아이들의
체감 고통의 부피가 비슷하듯이
행복감 또한
소유하고 있는 물질의 가치와는 상관없이 똑같다는 건 얼마나 다행한 일인지.
그래서 오늘 난 지상에서 가장 행복한 부자다.
나카지마 라모 '가다라의 돼지' 히가시노 게이고 '명탐정의 규칙'
미나토 카나에 '속죄'
방금 전 배달돼 잉크 냄새가 향기롭다.
이번 여름에 볼 작정으로 미리 구입해 놓은 이문열의 '초한지'
이런 건 원래 따끈따끈한 아랫목에 배 깔고 엎드려
창문 너머로 잉잉대는 겨울 바람소리를 들어가며 봐야 하는데...
고마워! 미니 미니
지난해엔 셜록홈즈 전집에 빠져 여름을 보냈고
이 책들은 지지난해 구입한 추리소설들이다.
특히 '한국 공포 문학 단편선'은 어찌나 잔혹한지
하필이면 이런 책을 고른 내 정신세계가 의심스럽다는
남편의 따끔한 한마디를 들어야만 했다.
접신한 무당도 아니고 돗자리 깔고 앉은 점쟁이도 아닌 내가
제목만 보고 고른 책 내용을 어떻게 미리 알 수 있단 말인가.
이 중 '모방범'은 정말 날 새는 줄도 모르고 읽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