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개미자리,선개불알풀
아침부터 후텁하다.
강바람이나 쐬보자 공원 앞 도로를 건너려는데 아이고, 또 예초기 돌아가는 소리.
불현듯 생각나는 게 있어 부랴부랴 달려갔다.
한 분은 도로에 인접한 잔디밭에서 또 한 분은 공원 화장실 옆에서 제초 작업 중이시다.
유럽개미자리,그 앙증맞은 꽃들이 아침 햇살에 하나 둘 꽃잎을 열고 있다.
어떡하지?
휴대폰 카메라를 들이대보면 뭐하나,너무 작아 촛점이 잘 맞지 않는다.
에휴, 의미 없다,관두자.
체념하고 산책이나 할 요량으로 자리를 떴다.
이제 강 아랫길로 내려서면 되는데 윙윙대는 소리가 자꾸 신경쓰이는 거다.
가서 말이라도 해 볼까?
하다가 다시 부질 없네, 풀떼기 따위가 무슨 대수라고.
앞으로 가지도 못하고 되돌아 서지도 못하는 지랄맞은 상황.
늘 하던 도둑질이라고
꽃이라고 보이면 일단 어딘가에 무엇으로든 남기고 싶은 충동은 어쩔 수 없다.
습관이 이래서 무서운 거다.
이걸 안 한다고 죽을 것 같진 않지만 드러운 미련은 남는다.
난 또 미련 남기는 건 죽는 거보다 싫다.
그분들이 돌계단 근처까지 오자면 시간이 좀 있다.
파스 붙이고 밸트 찬 허리가 살짝 부담스럽긴 하지만 뭐 어쩌겠는가.
뛰어야지,집으로.
설사똥 나오기 일보직전처럼 뛰어들어가
당분간은 들지 않기로 한 카메라에 접사렌스를 장착했다.
땀 흘리며 일하시는 분들께 얼음물 한 잔 드리지 못할 망정 폐되는 짓을 하면 안 되겠기에
적당하다 싶은 순간 벌떡,아니 끙끙대며 일어섰다.
여기도 제초벼락을 맞고 다 사라졌는 줄 알았는데 햐아, 감동.
생각보다 광범위하게 퍼져 있다.
다행.
일이 끝나기를 기다리며 벤치에 홀로 앉아 계시는 동네 어르신과
관절염과 허리병에 대해 심도있는 대화를 나눴다.
과부 사정 홀아비가 안다고 굳이 말하지 않아도 내 다 안다,
그럼 그럼, 우리같은 사람들은
눕거나 서거나 두 가지 뿐이거든...등 등.
팔십 어르신과 환갑 넘긴 내가 우리로 묶여 더 끈끈한 사이가 된다.
하늘나라에 계신 엄마 불러다 놓고
서럽고 속상했던 거 죄다 꺼내 미주알 고주알 일러바치는 것 같은 시간.
과부 홀아비의 뼈아픈 얘기가 시들해질 무렵
맞은 편에서 아직도 제초 작업을 하시는 아저씨 발 아래를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저기요, 저기 꽃이 피었거든요,
하니 둥그런 화분에 시선을 맞추시며 응, 피었네 하신다.
아니요, 그런 꽃 말고 엄청 작고 귀엽고 예쁘거든요.
지금 저분들이 싹싹 다 밀어버리고 있네요.
답답한 마음에 카메라를 열어 꽃을 확대해 보여드렸다.
안 뷘다.희끄레한 이건가 보구만.
안타까웠다.
풀 깍는 사람 중에 아는 이가 하나 있으니 가서 얘기라도 해 보란다.
됐노라고 그래봤자 풀이라고 풀이라 죽여도 죽여도 좀비처럼 다시 살아난다고 말씀드렸다.
점심 시간이 다가오자 일은 끝났다.
장비를 메고 우리 옆을 지나시던 아저씨 한 분이 알은체를 하며 인사를 건내는데
나도 잘 아는 동네 분이다.
이게 기회라는 거구나.
그러니까요, 이차저차 해서 저 꽃이 아주 귀하다고는 할 수 없으나
그렇다고 흔해터진 것도 아니고
잡초는 맞지만 잔디보다 더 클 확률도 별라당 없고
꽃도 겁나 예쁜데다 어쩌구 저쩌구 하자
어디 가 봅시다 하며 장비를 벗어 내려놓으신다.
얼씨구 손이라도 붙들고 갈 뻔 했다.
댕강 모가지가 잘린 꽃 하나를 검지 손가락 위에 올려 보시게 하고
많은 거 바라지 않으니 놀이터 아이들 발이 닿지 않는 경사면 한 무더기만 살려달라 말씀드렸다.
진작 깍기 전에 말하지 그랬냐,이제라도 알았으니 풀 깍을 때 잘 살피겠노라 하실 때
마음 속으로 복 받으소서 기도했다.
덕분에 늘 말끔한 공원에서 산책합니다,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