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강나룻길

연강길,6월 26일

타박네 2025. 6. 26. 17:01

피나무 꽃은 기대도 하지 않았습니다.

지난 기록만 봐도 이즈음이면 열매를 달고 있었으니까요.

비만 내리지 않아도 어디랴 싶어 낫 한 자루와 묵은 쌀 봉다리를 챙겨 나섰지요.

공짜로 먹은 나이 아니라고 요근래 엄살과 요령이 많이 늘었습니다.

차로 옥녀봉까지 올라가고 거기서부터 슬슬 걸어볼까 했는데 

오늘도 어김없이 인근 부대서 사격 연습을 하고 있더군요.

길이 막혔으니 할 수 없이 하던 대로 합니다.

큰 됫박으로 한 되는 족히 됨직한 쌀 무게 때문에 배낭을 둘러메는 순간부터 

파스로 도배한 목과 어깨가 미리 죽는 소리 하는 듯한 느낌.ㅋ

스므 걸음쯤 걷다가 아이고, 모르겠다 풀숲으로 들어가 반쯤 뿌려버렸습니다.

여기도 작은 새들이 있으니 알아서 먹겠지 하구요.

아침만 해도 뜨뜻미지근하던 하늘이 내가 제일 좋아하는 풍경 앞에 섰을 때는

앗싸리하게 열려 새삼스레 신비하기까지 했습니다.

거기서 새들이 조잘대는 곳으로 가 남은 쌀을 여기저기 뿌렸죠.

그 쌀은 지난 겨울 동네 지인이 너무 오래 묵어 사람 먹기엔 틀렸다며 버리겠다기에

나줘 나줘 하며 냉큼 들고 온 겁니다.

음쓰통에 처박느니 먹이 흔치 않은 겨울 새들에게라도 먹이면 좋겠다 싶었죠.

그러고는 겨울 다 가고 봄이 가고 여름이 온 겁니다.

 

한결 가벼워진 등짐에 이거 나만 보기 아까운데 싶은 푸른 하늘도 기막힌데

길가에는 나 좀 잡솨줘 하듯 산딸기들이 벌겋게 도열해 있습니다.

어제 진종일 내린 비로 말끔한데다 햇살을 받아 보석처럼 빛이 납니다.

그냥 지나가는 건 반칙이죠.

가방을 내려놓고는 작정하고 따 먹었습니다.

저요,평소 대놓고 말에 뻥을,아니 다소 과장을 하는 습관이 있는 거 압니다.

하지만 오늘은 거짓 일도 없이 배가 불러 혈당 걱정이 될 만큼 먹었습니다.

준비한 간식,스콘과 커피는 그대로 가지고 왔으니까요.

향긋 달달함에 취하니 멀리 들리는 사격장 총소리도 더이상 신경 쓰이지 않더군요.

칡덩굴에 갇혀 힘겹게  꽃봉오리를 밀어 올리고 있는 말나리와 아직 덜 핀 까치수염 하나,

개망초에게 그 넓은 땅 다 빼앗기고 더부살이 하듯 길가 한켠에 핀 키 작은 노란꽃땅꽈리.

그 정도만 해도 충분했습니다.

충분했는데...오작교 옆 뽕나무에 씨알 굵은 오디가 다글다글...

 

말나리 주변 칡덩굴이나 조금 잘라볼까 가지고 간 낫은 꺼내지도 못했어요.

먹자판에 정신줄을 놓아 그런 게 아니라 사실 이제 엄두가 나지 않을 정도로

꽃 환경이 최악입니다.

조금씩 조금씩 그러다 어느 날에는 왕창 사라져버리는 꽃들로 마음 상해서

발걸음을 뜸하게 하다가도 오늘처럼 하늘 푸르거나 입이 향기로운 날이면 

그래, 이 맛이야 하며 속없이 헤벌쭉 웃음이 납니다.

댐이 보이는 참나무 그늘에 앉아 때마침 딸이 보내준 손주 동영상을 대여섯 번 보고 나자

미래 인간 수명 500년을 예언한다는 무슨 기사를 본 기억이 나면서

그것까지는 아니더라도 연천 최장수 노인의 꿈이나 이뤄보자 불끈 힘이 솟기까지 합니다.

 

 

 

 

 

 

 

 

 

 

 

 

 

 

 

 

 

큰까치수염

 

 

 

 

 

 

 

 

 

큰조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