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한 밥상

노각 무침

타박네 2010. 8. 18. 22:49

 

안 먹는 음식이 많으니 못 만드는 음식도 많다.

요리 얘기만 나오면 느닷없이 묵언수행 중인 스님처럼 과묵해 지는,

미인 소박은 있어도 음식 소박은 없다더라~ 소리에 열등감 폭발하는,

할 줄은 몰라도 입맛은 살았다고 다네, 쓰네, 짜네 한마디 거들기 좋아하는 나.

 

얼마 전 이요조님 블로그에서 노각무침을 보는 순간

요 며칠 잠시 출장 가 있던 입맛이 그만 돌아오겠단 신호를 보내왔다.

전곡 장날 할매들이 이고 나오신 노각을 좀 사 와야지 하다가도

번번히 잊고 말았는데 울냥반이 어디서 구했는지 튼실한 노각 네 개를 꺼내 놓는다.

식사를 마친 피오나가 '외부인 출입금지'인 제 방으로 스며들기 전에

냉큼 식탁 위에 펼쳐 놓고 껍질을 벗기기 시작하자

딴엔 재미난 놀이처럼 보였는지 저도 거들겠다며 덤벼든다.

 

노각무침 하면 돌아가신 시어머님이 바로 떠오른다.

동네에선 손맛이 좋기로 정평이 난 분이시긴하지만 특히 이 노각무침은

이제껏 내가 먹어본 것 중에서 어머님표가 단연 최고다.

생각을 거슬러 올라가다 보니 '고향의 맛' 백색 조미료의 힘을 살짝 빌리신 것 같기도 하다.

어찌됐든 요즘으로 말하자면 우리 어머님, 노각무침의 달인이었음은 분명하다.

내 고도의 심리전에 걸려든 피오나가 섬섬옥수로 아까운 오이 살을 다 파내고 있다.

첫술에 배 부르랴 하는 심정으로 꾹~ 참았다.

감히 어머니 솜씨와 겨룰 수는 없지만 그래도 이 정도면... 하면서 흐믓!

소금에 살짝 절였다. 

소금에 절인 노각을 짜려고 베보자기를 찾으니 이사하면서 어느 구석에 쳐박혔는지 없다.

개똥도 약에 쓰자니 귀하다더라만.

이 없으면 잇몸으로.

양파망에 넣고 죽을힘을 다해 비틀어 짰다.

음식 만들며 특전사 훈련처럼 빡세게 힘 써 보긴 근래들어 처음이다.

여기에 고추가루 (몇 숟가락 이런 거 안한다) 대충 술술 뿌리고

고추장 푹 떠서 두어 번 .무치다가 희멀건해 보여 다시 한 숟가락 더!.

파, 마늘 내 맘대로, 깨소금, 참기름도 휘리릭 ( 내 손이 그만! 할 때까지 ) 쏟아 붓고

주워들은 풍월은 있어서 설탕 대신 매실엑기스도( 빠른 속도로 양푼 한 바퀴를 돌릴만큼) 넣고

조물조물 무쳤더니 봉사 문고리 잡은 격으로 맛있다.

정말, 정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