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Book소리

가다라의 돼지

타박네 2010. 10. 20. 21:25

 

 

가다라의 돼지

글:  나카지마 라모

 

예수가 가다라의 땅에 도착하니

악령에 씐 두 남자가 묘지에서 나와 예수와 마주쳤다.

이 남자들은 두 명이었지만 그 몸에는 열 몇 명의 악령이 씌여

남자들의 입을 빌려 큰 소리로 외치고 있었지.

악령들은 말했다.

'하느님의 아들이여. 어찌하여 우리를 간섭하려는 겁니까.

아직 때가 되기도 전에 우리를 괴롭히려고 오셨습니까?'

악령들은 또 말했다.

'우리를 쫓아내신다면 저 돼지의 무리 속으로 보내 주십시오.'

예수가 '가라'하고 한마디 하셨다.

마귀들은 남자들의 몸을 떠나 돼지 무리 속에 가두어졌다.

그러자 그 무리 전체가 한꺼번에 움직여

벼랑에서 바다로 뛰어들어 전부 물 속에서 죽어 버렸다.   430p

(마태복음 8장 28절~32절)

 

올 여름용으로 구입한 추리소설 중 마지막으로 남은 한 권이다.

가장 재미있을 것 같아 아껴 뒀던 게 아니라

759쪽에 이르는 방대한 분량에 미리 질려서 미루고 미뤘었다.

법전을 방불케 하는 이런 두꺼운 양장본 책을 볼 때면 늘 느끼는 거지만

머리맡에 두고 괴한이 침입 했을 때 무기 또는 흉기로 쓰면 딱 좋을 듯하다.

뻥 조금 보태자면 하루 두 끼 먹고는 책을 들고 있기가 힘들 정도.

그래서 이걸 읽는 동안엔 하루 다섯 끼 먹었다.

 

아프리카 케냐를 배경으로 주술과 저주, 초능력, 최면등

초자연적인 현상을 다룬 오컬트추리소설이다.

 

영화 오멘이나 엑소시스트에서의 퇴마의식,

사극에 빈번하게 등장하는 짚풀인형에 바늘 찌르는 저주.

원귀나 재앙을 막는다는 부적등을 익히 보아왔던터라 

저주나 주술이라는 말은 낯설지 않다.

이런 이야기 소재에 더해 허약한 영혼에 쉽게 파고드는 사이비 종교의 허상을 폭로하고

책에 등장하는 주술사 '바키리'의 입을 빌어 부조리한 문명사회를 실랄하게 꼬집기도 한다.

추리소설 치고 참 많은 이야기를 담고 있다.

 

어이없게도 이 책을 읽으며 내가 가장 공포스러웠던 부분은

자신의 의지로도 통제할 수 없는 영혼의 문제가 아니라

사람이나 동물의 배설물로 오염된 호수나 웅덩이에 산다는 기생충과

열대 모기나 벌레들로 인한 풍토병 이야기다.

기생충이 인간의 뇌 속으로 들어가  환각과 환청을 일으키고

끝내는 온 몸 구멍구멍마다 피를 뿜으며 죽는다는 대목에선

귀신을 본 것보다 더 소름이 끼쳤다.

연가시에 감염된 곱등이처럼 말이다.

 

순수 부족의 상징 부시맨으로 기억되는,

사자가 포효 하고 얼룩말과 누 떼들이 뛰는 저 광활한 세렝게티 초원의,

흑진주알 같은 눈망울의 아이들과 지구상에 남은 마지막 파라다이스로

늘 동경의 대상이었던 아프리카의 이면을 덤으로 보았다.

하쿠나 마타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