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한 밥상

사발농사도 이쯤이면~

타박네 2011. 2. 17. 20:03

 

보름인지도 몰랐다.

어머님 살아 생전이라면 며칠 전부터 묵나물 삶으랴,

잡곡 구입하랴 수선스러웠을 테지만

돌아가신 이후로 우리집에서 절기가 사라졌다.

가뜩이나 정신을 저 안드로메다에 귀양 보내놓고

충동적이고 즉흥적인데다 일관성 없는 생활습관이 몸에 밴 터에

뭘 더 챙기는 건 불가능하다.

 

가까이에 나보다 한참 어린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텃밭농사부터 그 수확물로 장 담그고

김장까지 직접 해야 직성이 풀리는 지인이 있다.

봄이면 산과 들을 쏘다니며 고사리, 취등 온갖 나물을 채취해 말리고

오미자며 개복숭아 오디등 몸에 좋은 효소란 효소는 다 만들어 퍼돌린다.

사방 백리안에 굶어 죽는 사람이 없게 하라,

했다던 경주 최부잣댁 혼이 씐것 같다.

그러고 보면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꼭 사회 지도층에서만 찾을 일은 아니다.

떡이며 빵,과자도 집에서 만들어 먹는 극성을 떠는데

그 최대 수혜자가 바로 나.

그야말로 효도하는 열 며느리 안 부러운 상황이다.

 

스스로 생각컨데 난 사람복 하난 기막히게 타고 났다.

만나는 사람마다 귀인이 아닌 경우가 거의 없었고

내 생활반경 십리 안에는 좋은 사람들 백 명 정도가 쫘악~

포진해 있을 정도.

이쯤되니 아마도 내가 전생에 목숨 몇 살렸지 싶은

얼척없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언제나 그렇듯 하는 일 없이 바빠서 과로사 직전에 있는

이 국가공인 고품격 백수를 불러 따뜻한 오곡밥과

시래기된장국, 취, 토란대. 망촛대, 가지, 시래기나물로 한상 가득 차려준

오지랖 작렬 지인덕에 오랜만에 과식 좀 했다. 

먹이기가 끝나면 곧바로 이어지는 보따리 싸기.

금방 짠 들기름과 집간장, 된장.

볶은콩과 거피한 들깨가루,무장아찌,각종 나물,

우리가족이 이틀은 먹어야할 오곡밥,

볶은 참깨와 집에서 만든 현미누룽지,

시지않은 김장김치와 사슴네서 보고는 침을 질질 흘린 동치미,

갓구운 쿠키까지.

크아~하늘에 계신 친정엄마의 환생이 따로 없다.

아무리 내 특기와 취미가 사발농사 짓는 거지만

이쯤되면 불로소득에 대한 후환이 살짝 걱정스럽기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