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한 밥상

가출한 입맛을 찾아서~

타박네 2011. 3. 27. 21:22

감기 우습게 봤다가 큰코 다쳤다.

감기는 병원 다니면 일주일, 안다녀도 칠 일이라는 말만 믿고

처음 병원에서 처방해준 약과 시럽만 열심히 먹으며 

일주일 지나기만 기다렸건만

갈수록 기침은 더 심해지고,

기침을 하다못해 토할 지경에 이르러서야 다시 병원을 찾으니 기관지염이란다.

이런 제길슨!

그러는 사이에 나하고 찰떡궁합이던 입맛은 슬그머니 집을 나가버렸고 

할 수 없이 겨우 목숨 연명할 정도로만 먹으며 살다보니 

보는 사람마다 얼굴에 누가 그렇게 심한 낙서를 해 놨느냐,

타박네 어머닌줄 알았다며 넘어진 놈 한 번 더 밟는 소리들을 한다.

듣기 좋은 립써비스는 이럴 때 안 쓰고 아껴뒀다 똥 만들려고 그러는지 원.

살짝 섭하지만 용서하기로 한다.

거울에 비친 내 모습을 보고는 나도  헉!넌 누구냐? 하고 놀라니까.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라고 묻는다면 지금같아선

미래를 향한 꿈도, 눈물나는 사랑도 아닌 밥심이라고 말하겠다.

오죽하면 천하절경 금강산도 식후경이라는데 말이다.

 

후들거리는 다리를 이끌고 마트에 가서

그저 눈에 띄는 파란것들은 다 쓸어담아왔다.

취나물, 유채나물, 세발나물, 원추리, 비름나물.

이제 집 나간 입맛을 살살 꼬셔서 데리고 올 한판 부엌놀이를 할 시간.

먼저 강된장.

오늘도 변함없이 버섯사랑은 계속된다.

새송이, 느타리, 표고버섯과 양파, 대파, 청양고추는 송송 썰고,

두부 반모는 으깨 둔다.

우묵한 팬에 으깬 두부, 된장 3숟가락, 고추장 한숟가락을

멸치육로 지름하게 풀어서 한소큼 끓인 뒤

송송 썬 버섯을 넣고 뒤적이며 마저 끓이면 된다.

이렇게 만들어 놓은 두부강된장은

짜지 않아 그냥 밥에 비벼 먹어도 맛있고

각종 푸릇한 쌈채소,특히 양배추나 머위,근대등을 살짝 데친 숙쌈에

이 강된장을 넣고 싸 먹으면 남의살 없이도 정말 맛있다.

완성된 두부버섯강된장

종류는 많으나 양이 적어 다듬기 번거롭지는 않다.

이 다섯가지 나물을 구입하는데 만원도 안 든 것 같다.

제철 야생에서 자란 것이 아니라 향이 적은 대신 부드럽긴 하다. 

왼쪽부터 세발나물, 유채나물, 비름나물, 원추리, 취나물

몽땅 소금 약간을 넣은 끓는 물에 데쳤다.

다 그렇지만 특히 세발나물은 아주 살짝 데쳐내야 한다. 

취나물과 유채나물은 소금에 

세발나물은 된장으로

원추리나물은 새콤달콤하게 초고추장,

비름나물은 매콤하고 고소하게 고추장만으로 무쳤다.

이제 석석 슥슥 비벼줄 시간.

이래도 가출한 입맛이 돌아오지 않는다면 그 건 배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