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색 홀치기염색
생각이란 걸 싫어하는 내가 이 다색홀치염한 광목 조각의 용도를 두고 참 심각하게 고민했다.
꽃무늬가 번짐없이 또렷했더라면 액자를 만들어도 좋았겠지만
완성된 그 순간의 감격이 지난 후에 지극히 이성적인 눈으로 다시보니 아쉬움이 군데군데 묻어난다.
하지만 그간의 노고를 색각하면 뭔가를 만들어 두고두고 요긴하게 쓰일 곳을 찾아줘야 하는데
도무지 이 한 조각으로는 마땅히 떠오르는 게 없다.
꼼지락이 빅백을 만들어 주겠노라 고마운 제안을 했지만
지금 사용하는 바느질가방만으로도 충분하기에 정중히 사양을 했다.
난 무엇이든 하나면 된다.
죽어라 하나만 판다.
패도 한 놈만 잡아 팬다.
마땅한 용도를 정하지 못한 채 일단 퀼팅솜을 대고 무늬를 따라 듬성한 홈질로 누볐다.
퀼팅을 하는 동안에도 간지를 댈 것인가, 튀는 색상의 바이어스를 댈 것인가를 두고 끊임없이 갈등했다.
내가 바느질이란 걸 시작한 이래 이만큼 깊이 생각한 작품은 아마도 없을 듯.
뭐 만드는 거야?
울냥반이 묻길래 아직 모른다 했다.
뭐야?
피오나가 관심없는 척하며 관심을 보인다.
걸레로 쓰려고~ ^^
광목 네겹이 물리는 가장자리 홈질은 정말 힘들다.
이게 고문이었으면 그것이 무엇이든 벌써 이실직고 했을 거다.
덧댈 것도, 꾸밀 것도 없이 있는 그대로 마무리를 하다보니 비로소 그 용도가 희미하게 떠오른다.
한 칸만 없었으면 윷판으로 써도 좋았을 것을~
뒷판은 광목에 코치닐 동매염한 것.
도톰하고 폭신한 다포가 완성됐다.
버선발로 뛰어나갈 만큼 반가운 손님이 오시거나
하루종일 수다를 떨어도 질리지 않는 친구가 오면 이 다포를 깔고 차를 대접할 참이다.
그러다가 어느날 문득
명품백 하나 없는 내 신세가 처량맞아 보이거나 정신적 허영심이 폭발하기 일보직전 쯤 될 때
확~ 우그려뜨려 방바닥을 쓱쓱 닦을 수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