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연염색

다색 홀치기염색

타박네 2011. 7. 10. 15:49

 

생각이란 걸 싫어하는 내가 이 다색홀치염한 광목 조각의 용도를 두고 참 심각하게 고민했다.

꽃무늬가 번짐없이 또렷했더라면 액자를 만들어도 좋았겠지만

완성된 그 순간의 감격이 지난 후에 지극히 이성적인 눈으로 다시보니 아쉬움이 군데군데 묻어난다.

하지만 그간의 노고를 색각하면 뭔가를 만들어 두고두고 요긴하게 쓰일 곳을 찾아줘야 하는데

도무지 이 한 조각으로는 마땅히 떠오르는 게 없다.

꼼지락이 빅백을 만들어 주겠노라 고마운 제안을 했지만

지금 사용하는 바느질가방만으로도 충분하기에 정중히 사양을 했다.

난 무엇이든 하나면 된다.

죽어라 하나만 판다.

패도 한 놈만 잡아 팬다.

 

마땅한 용도를 정하지 못한 채 일단 퀼팅솜을 대고 무늬를 따라 듬성한 홈질로 누볐다.

퀼팅을 하는 동안에도 간지를 댈 것인가, 튀는 색상의 바이어스를 댈 것인가를 두고 끊임없이 갈등했다.

내가 바느질이란 걸 시작한 이래 이만큼 깊이 생각한 작품은 아마도 없을 듯.

뭐 만드는 거야?

울냥반이 묻길래 아직 모른다 했다.

뭐야?

피오나가 관심없는 척하며 관심을 보인다.

걸레로 쓰려고~ ^^

광목 네겹이 물리는 가장자리 홈질은 정말 힘들다.

이게 고문이었으면 그것이 무엇이든 벌써 이실직고 했을 거다.

덧댈 것도, 꾸밀 것도 없이 있는 그대로 마무리를 하다보니 비로소 그 용도가 희미하게 떠오른다.

 한 칸만 없었으면 윷판으로 써도 좋았을 것을~

 

뒷판은 광목에 코치닐 동매염한 것.

 

도톰하고 폭신한 다포가 완성됐다.

버선발로 뛰어나갈 만큼 반가운 손님이 오시거나

하루종일 수다를 떨어도 질리지 않는 친구가 오면 이 다포를 깔고 차를 대접할 참이다.

그러다가 어느날 문득

명품백 하나 없는 내 신세가 처량맞아 보이거나 정신적 허영심이 폭발하기 일보직전 쯤 될 때

확~ 우그려뜨려 방바닥을 쓱쓱 닦을 수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