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연염색

물고기 문양 홀치기염

타박네 2011. 8. 9. 21:51

 

 

잉어는 자손번창과 부와 명예를 상징하는 물고기다.

이 홀치기를 하면서 내심 은근한 염원을 품은 건 사실이다.

이번엔 기필코 흡족할만한 문양을 얻어 누가 봐도 있어보이게

(품위, 가치, 정성, 예술성 등등)

표구를 해서 자손대대로 물려 주리라.

자손이라 봐야 달랑 피오나 하나.

지금 같아선 천연염색 할애비라 해도

소지섭 브로마이드 한 장만도 못한 취급을 받을 게 뻔하다.

그래서 화석처럼 굳어가는 머리를 나름 굴려

홀치기염의 과정 일부라도 피오나에게 보여주기로 했다.

뺀질뺀질 놀다가 피오나가 와 잠시 쉬는 틈이면 슬몃 옆자리에 엉덩이를 디밀고 앉아

홈질을 해 놓은 실을 잡아 묶으며 손가락 잘려나가는 비명을 지르기도 하고

얼마나 섬세함과 인내를 필요로 하는 작업인지에 대해 장황한 설명을 하기도 했다.

미미하나마 효과가 있는 듯도 했다.

무심한 척 하면서도 슬쩍 관심을 보이기도 하고

차라리 공부가 쉽겠어요~ 하는 존경스런 표정을 짓기도 했으니까.

 

 

써글! 이번에도 역시 나답다.

문양의 선명도는 둘째 문제고 비늘 하나를 덜 묶어 쓸개 빠진년 마냥 휑하다.

마치 누군가가 한 입 먹어치운 생선구이 꼴 났다.

어디 한군데가 모자라는 내 모습을 보는 것 같기도 하고.

뭐, 나쁘진 않다.

비워야 채워주는 세상의 이치도 그렇고

조금 모자란듯 해야 주변에 영민한 친구들이 꼬이는 사교계 불변의 원리도 그렇고

 

무엇보다 나이 사십 넘어서면서 반평생 나를 고문하던 '단심가' 족쇄를 풀고

고쳐먹은 내 인생관이 '하여가' 아닌가.

이런들 어떠하리, 저런들 어떠하리, 비늘 한 개쯤 빠지믄 어떠하리~

남다르니 더 좋을씨고~

 

이제,피오나에게 하고 싶은 말이 분명해 졌다.

부와 명예보다 더 소중한 것은 마음 한자리를 비워 놓는 일.

저 물고기처럼

어느 한 구석을 비워 놓아야

사람이 찾아들고

사랑이 스며든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