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이 살찌는 밥상
요즘 나는 내 분수에 넘치는 인연들을 생각하면 가끔 마음이 무거워 진다.
피아노 치는 섬섬옥수로 호미들고 들판에 쪼그려 앉아
가을바람 맞으며 캐왔을 냉이봉다리,
출근 길이라며 아침 댓바람부터 나타나 손에 쥐어주고 간
도토리묵 한덩어리,
그리고 김장 겉절이 한보시기,
금방 밭에서 쑥 뽑아온 내 다리통 두 배만한 무와 배추,
오동통 잘 빠진 마 몇 뿌리...
내 아무리 사발농사의 달인이지만 이 많은 불로소득,
이 무거운 정을 어쩌면 좋으랴 싶다.
내겐 가슴 벅차면서도 한편 버거운 인연들이다.
아는 사람이면 다 알겠지만 나는 계산이 서툰 인간이다.
특히 내 유리한 쪽으로.
초등학교 2학년 때 단 한 문제도 풀지 못한 산수시험지를 제출하고는
선생님으로부터 뺨 두 대를 오지게 얻어터진 그날 이후
숫자나 계산이라면 자다가도 경기를 한다.
실제로 반백살이 넘은 이제까지도
수학 시험지를 앞에두고 쩔쩔매는 악몽에 시달리곤 한다.젠장할~
사정이 이렇다보니 잘 기억하고 있다가
받은 만큼 돌려주는 영특한 짓 따윈 하지 못한다.
다만 늘 그렇듯
마음의 곳간이 풍요로워 제 주변 사방 백리 안에 굶어 죽는 이가 있나 없나
살펴가며 정 한 덩어리씩 기꺼이 나눠주는 그들,
가족 삼대에 복이 철철 넘치길...
축원하는 것으로 뼈에 사무친 고마움을 대신할 뿐.
요즘엔 그 기도마저 귀찮아져
복 지을 기회를 준 것에 감사하라며 오히려 당당히 구걸한다는
인도의 철학자 거지처럼 좀 뻔뻔해져 볼까도 생각 중이다.
냉이된장국,파래무침, 도토리묵, 김장겉절이, 무말랭이무침,
마전으로 차린 소박한 우리집 저녁 밥상.
절대 몸이 살찔 걱정이 없는,
그대신 마음이 토실하게 살찌는 따뜻한 밥상이다.
마는 보통 아침에 우유와 꿀과 함께 갈아 먹는데
이렇게 전이나 튀김을 해도 맛있다.
감자나 고구마처럼 도톰하게 썰어 부침가루옷을 입혀 노릇하게 지져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