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소한 일상

옷 욕심에~

타박네 2012. 2. 26. 17:07

 

징징거려 추가 주문에 성공한 꼼지락표 뜨개조끼.

제작과정 보러 가기 http://blog.daum.net/banulyrang/481

목과 겨드랑이 부분을 깊게 파 편안하기도 하지만

아랫단 옆트임에 붙여놓은 단추 부분이 특히 마음에 든다.

 

다 늙어 옷 욕심이다.

따지고 보면 늙은 삭신 탓이기도 하다.

보온성에 있어 무어니무어니 해도 뜨개옷만한 게 드물다.

천지사방 삽질하고 다니는 나지만

불행히도 뜨개질만큼은 엄두를 못 내고 있는데 그 이유는

첩보원들이나 해독 가능한 도안에서부터 미리 질려 버리기 때문.

허니 어쩔 수 없다, 사람 불러야지. 것두 전문가로.^^

 

뜨개옷에 관한 내 생의 첫 기억은 엄마가 짜 주신 스웨터와 바지, 덧신이다.

지금처럼 색상이 다양하고 고왔던 것도 아니고

털실의 품질도 떨어져 한겨울 칼바람을 막기엔 역부족이었던

그 성글고 까끌한 느낌이란...

뜨개옷을 안 입겠다 입을 닷발이나 내밀며 골투가리를 부리곤 했었다.

그렇다고 상점에서 파는 예쁘고 따뜻해 보이는 옷을 사달라 대놓고 떼를 쓰지도 못했다.

어린 눈에도 곤궁한 집안 형편 살피는 눈치는 있어 결국 팔꿈치나 무릎이 날근날근 닳아 

구멍이 숭숭 날 때까지 입고 다녔다.

그러면 또 성한 부분을 풀어 뜨건 김이 주둥이로 솔솔 나오는 주전자에 실을 정돈한 다음

색상 조합이고 뭐고 없이 자투리 실을 이어 다시 옷을 짜기 시작하시던 엄마.

징하게 궁상스럽던 그 모습이 지금은 뼈에 사무치게 그립다. 

 

옷 욕심이라고 했지만 사실 난 옷에 관한한 짝퉁채식과 더불어

삼동네 주민들이 다 알고 있을만큼 욕심이 없는 사람이다.

옷에 얽힌 일화를 책으로 쓰자면 두어권은 족히 나올 정도다.

경제적 여력은 둘째고 옷쇼핑을 좋아하지 않는 게 가장 큰 문제였다.

이런 내 속사정을 모르던 지인들의 딱한 시선이

급기야 옷 선물로 이어지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어느날 이를 안 남편이 마치 자기 자존감에 치명타를 당한 것처럼

제발 옷 좀 사 입으라! 불같이 화를 냈지만 난 그쯤은  깨끗히 무시할 수 있었다.

하지만, 제 2의 피부인양 격하게 아끼며 여름 한철만 빼고는 전천후로 애용하던

벽돌색 단벌 잠바를 입고 (그 대신 깨끗하게 빨아 입었다)참석한 딸아이 고등학교 입학식.

친구 엄마들의 복슬복슬 털달린 코트를 곁눈질하며 보던 딸아이가 

엄마, 춥지 않아? 묻는다.

제 딴엔 유독 초라해 보이던 엄마 모습이 무척이나 맘에 쓰였었던 것인데.

......

나만 편하면 그만이지 않겠냐는 이기적 사고방식의 전환점이 된 날이었다.

세상에서 제일 무서운 게 자식의 눈이다. 

 

굳이 도를 닦자는 건 아니지만 나름 옷에 관한 철학이 있기는 하다.

그건 바로 세상이나 인류를 위해 뭐 거창한 업적을 남기지는 못할 망정

나로 인해 배출될 쓰레기라도 좀 줄여 보자는 것.

뭐든 꼭 필요한 만큼, 내가 감당할 수 있을 만큼만 소유하겠다는 것.

하나를 얻으면 하나를 즉시 버리는 것.

그래서 청바지와 면티셔츠 두세 벌을 넘지 않는 '단벌'과 '재활용 옷'을 고집했다.

누가 패션 스타일을 물어보면 나는 빨래줄 패션이오

( 마르는 대로 빨래줄에서 바로 걷어 입는~)대답하곤 했는데

옷차림 따위에 신경 쓰는 시간을 줄여 재미난 일에 더 많은 시간을 할애할 수 있어 좋고

남들이 입던 옷을 얻어 입으면 섬유 속 화학 성분이 충분히 빠져있어

알러지가 심한 내 피부가 편안하니 그 또한 좋은 일이기 때문이다.

 

'옷차림도 전략'이라는 광고 문구가 있었다.

맞는 말이다

때와 장소를 가리는 옷차림은 분명 상대에 대한 예의고 전략이기도 하다.

그 사람의 사회적 신분이나 직업,

더 나아가 가치관까지 엿볼 수 있는 것 또한 옷차림이니

그 중요성은 결코 가볍지 않다.

하지만 겉치레로 자신이 가진 물질적 풍요를 드러내고 싶어하는 허영,

또는 부족함을 감추려는 과도한 자기 포장은 안쓰럽기만 하고

보석같은 내면의 아름다움 따윈 애초부터 개무시하고

일단 보이는 것만으로 판단,

현대판 카스트제도의 피라밋 구도에 그 사람을 끼워 맞추는 시선은

예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어 씁쓸한 건 사실이다.

오죽하면 '옷이 날개'라거나 '입은 거지는 얻어 먹어도

벗은 거지는 못 얻어 먹는다'란 말이 대대로 내려 오겠는가.

아무리 그렇다해도 제 버릇 개 못 준다고 조금 나아지긴 했지만

옷에 관한 내 습관을 단박에 고치기는 어렵지 싶다.

'방금 사 입어도 10년 된듯한' 무채색의 옷이나

누군가가 입다 물려준 날근날근한 옷이 여전히 내 스타일이기 때문.

물론 10년을 입었어도 방금 산 새옷 같으면 금상첨화겠지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