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한 밥상

허리 졸라매고 차린 남편을 위한 밥상

타박네 2012. 3. 19. 09:43

 

얼마전 느닷없이 툭 하고 허리 부러지는 소리가 들리더니

옴짝달싹 하기도 힘들만큼 아팠다.

심정상 허리가 부러졌다 느끼는 것이지 실제 병명이 그렇다는 건 아니다.

술췐놈마냥 어정어정 걸어 병원을 찾아가 허리가 댕강 부러졌나 봐요 했더니

부러지면 그렇게 두 발로 걸어 들어오지 못합니다 한다.^^

예전에도 간혹 있었던 일이었으니 올것이 또 왔구나~ 하면 그만이지만 

당장 잘잘 싸돌아다닐 일에 막대한 지장이 있어 여간 짜증나는 게 아니다.

언제나 그렇듯 그 짜증은 세상에서 제일 편한(만만한) 남편에서 고스란히 돌아간다.

허리밸트를 차고는 뻣대고 앉은 나 대신 반찬통을 치우다

김치가 담긴 유리용기를 떨어뜨려 박살낸 울냥반을

똥 싼 놈이 성 낸다고 눈이 째져라 흘겨보면서

도대체 마누라 아니면 밥은 먹고 살겠냐 끌끌 혀 차는 소리까지.

 

라면을 먹어도 마누라가 끓여줘야 더 맛나다는 남편을 위해

참피언밸트 꽉 조이고 식은 땀 질질 흘려가며 주방으로 간다.

자발자발 떠드는 조동아리만 빼고는

순번 돌아가며 고장나는 마누라 데리고 살아주느라

뼈골이 빠질 지경인 남편 고생에 비하면 이 정돈 새발의 피다.

전생에 하나는 나라를 구하고 하나는 팔아먹은 인연인 건지.

만약 내가 먼저 가면 꿈에 나타나 복권번호는 꼭 알려줄 테니

그걸로 퉁치자고 언제 말한 적 있던가?

통큰 친구가 준 삶은 무청시레기다.

직접 농사지은 무청을 말린 건데  뭔 재주를 부려 삶았는지 엄청 부드럽다.

김치통 가득한 이 시레기로 요즘 된장국도 끓이고 

들깨가루 넣어 볶아도 먹고 자글자글 조려도 먹고

아주 시레기 판을 벌리고 있다.  

시레기 꽁치조림

통조림용 꽁치를 이용했다.

뼈를 발라내야 하는 번거로움도 없고 그 나름의 어떤 감칠맛이 있는지 남편이 좋아한다.

시레기를 깔고 꽁치를 얹은 다음 양념을 (고추가루, 집간장, 마늘 , 생강술. 후추) 한다.

여기에도 멸치육수는 필수.

국물이 자작하게 조려내면 된다.    

한 번 상에 올랐던 메뉴를 다시 올리는 건 어쩐지 미안해 먹겠느냐고 물어보곤 하는데

이 시레기조림은 남은 걸 자진해서 찾는다.

오랜만에 국물 몇 방울 빼고 알뜰하게 다 먹었다.

가지찜

 

친구집에서 먹어보고 의외로 괜찮아 실습에 돌입.

숙주나물은 데쳐 물기를 꼭 짜고 으깬 두부에 당근.

송송 썬 달래, 마늘, 소금, 후추 약간을 넣어

되직하게 뭉쳐 놓는다.

참,식재료들이 끈기가 없어 흐르르 풀어질까봐 전분을 좀 추가했다.

두부의 양이 좀 많은 듯 하지만 뭐~

십자 모양으로 칼집을 낸 가지 사이에 속을 꽉꽉 채우고 찜솥에 쪄내면 된다.

이 가지찜은 양념장이 참 중요하다.

개인적으로 달달한 양조간장 맛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그렇다보니 아무래도 음식의 간을 맞출 때 집간장을 많이 이용하게 된다.

여기선 간장을 그대로 쓰면 너무 짜므로 다시마육수를 적당히 섞는다.

송송 썬 달래와 다진 마늘, 깨소금 , 참기름, 고추가루를 넣은 달래양념장. 먹기 전에 뿌려 준다.

달래굴전

달래 한 단을 사서 두루두루 요긴하게 써 먹는다.

날씨가 더워지면 조개류 맛이 떨어진다.

부지런히 더 먹어둬야 한다.

한겨울 별미인 굴과 봄철의 상징 달래의 환상적인 궁합!

시레기 고맙다!

무말랭이도 고맙다!

콩장도 고맙고 짠무도 고맙다!

현미도 고맙다!

쥐눈이콩도 감사합니다!

덕분에... 이 고품격백수 먹고 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