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Book소리

나의 삼촌 브루스리

타박네 2012. 7. 2. 09:52

 

 

한동안 물 건너 온 격조 높고 있어 뵈는 유머 대사전,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웃음'에 빠져 있었다.

처음엔 그 고품격 유머를 이해하고는 빙긋, 크흐흐 웃은 내 자신이 대견하기도 하고 

마치 봉골레 스퐈게리를 처음 먹어보던 날처럼 맛깔스런 이국 유머잔치가 신기하기도 했으나

한 입 두 입 먹을수록 맵싸하고 벌건 총각김치 생각만이 간절한 

촌티증세에 시달릴 즈음 만나게 된 '나의 삼촌 브루스리'

그래, 역시 우리 것이 입에 마음에 착착 감기는 법이여.

 

섬섬옥수로 허리춤을 착 휘감아 오는 평양기생이 이럴까. 아찔어찔한 매력 속에 절절한 슬픔까지.

이 책의 느낌을 한 마디로 표현하자면,

며칠 전 내 친구 재벌네 노래방에서 목구녕 실핏줄 터지게 불렀던 노랫말 중에

아아, 웃고 있어도 눈물이 난다...( 그 겨울의 찻집 )

딱 그거다.

 

누군가를 치명적 사랑에 빠지게 하는 덴 그저 씨익, 미소 한방이면 충분하다.

그리고 때로는 많은 말이 오히려 지저분하고 구차스럽다.

첩첩산중 굽이굽이 산등성이를 돌아 오르다 발 아래 명경지수를 보았을 때,

아!  그 외마디 감탄사가 전부인 것처럼.

 

마을에서도 유독 찢어지게 가난한 종태네가

기르던 닭이며 토끼며 돼지를 몽땅 내다 팔아 꿈에 그리던 암송아지 한 마리를 들여 오던 날.

봉당에 쪼그리고 앉아 담배를 뻑뻑 피워대며  

송아지를 힐깃힐깃 바라보는 봉태아버지를 묘사한 부분이 소설 초반에 있다.

그 대목이 이야기의 백미이자 염화시중의 미소를 끌어낸 꽃 한 송이고

명경지수 앞에서 토해낸 아! 이며 낚시줄에 매달아 놓은 오동통 실한 지렁이 반 토막,

살포시 조아리고 앉았다가 슬쩍 모로 치켜뜨며 짓는

평양기생 눈웃음 한 방이라고 감히 나는 말하고 싶다. 

누구라도 '통'하거나 낚여들라 이거지. 흐흐~

이 책을 소개하는 데에는 굳이 많은 사설이 필요치 않다.

   

' 종태 아버지는 애써 점잖은 척 혼자 저만치 떨어져 봉당에 쭈그리고 앉아 있었는데,

기분이 좋은 건지 어떤 건지 알 수 없는 애매한 표정이었다.

그는 기분이 좋긴 좋되 기분 좋은 표정을 지어본 지 너무 오래되어 마치 기분 좋은 표정을 까먹은 사람처럼,

혹은 기분이 좋긴 좋되 내가 과연 그런 표정을 지어도 되는 걸까,

혹시 그런 표정을 짓는 순간 이 모든 행복이 허망한 꿈처럼 한순간에 사라져버리는 게 아닐까 하는 두려움에

안절부절못하며 송아지를 쳐다보긴 쳐다보되 노골적으로 쳐다보는 게 왠지 쑥스러워서

담배를 피워 물고 딴청을 부린다고 부려보지만 그래도 자꾸만 송아지에게 눈길이 가는 걸 어쩔 수 없어

쳐다보기는 쳐다보되 곁눈질로만 쳐다보다, 아니 젠장,

우리 송아진데 까짓꺼 한 번 쳐다보지도 못하나, 하며 괜히 혼자 빨끈해 눈을 부릅떠 정면으로 쳐다보려고 했지만

그래도 왠지 민망하고 부끄러워서 슬그머니 눈을 내리깔고 담배 연기를 내뱉는 척 재빨리 송아지를

곁눈질로 힐끔 한 번 쳐다보는 모습이 마치 병아리가 물 한 모금 마시고 하늘 한 번 쳐다보는 것처럼

담배 한 모금 빨고 송아지 한 번 쳐다보고 ,다시 담배 한 모금 빨고 송아지 한 번 쳐다보는 식이다보니

담배를 계속 피워대 목이 칼칼하지만, 그러는 와중에도 기분이 좋아져 자신도 모르게 자꾸만 콧구멍을

벌름거리게 되어, 콧구멍 벌름거리는 걸 사람들이 눈치 챌까봐 괜히 헛기침 한 번 하고

헛기침 한 번만 하면 사람들이 헛기침이라는 걸 눈치챌까봐 헛기침 한 번 더 하고,

그렇게 계속 담배 한 모금 빨고, 송아지 한 번 쳐다보고, 콧구멍 한 번 벌름거리고 헛기침 한 번 하고,

다시 담배 한 모금 빨고, 송아지를 한 번만 쳐다봐야 되는데, 아차! 자신도 모르게 두 번 쳐다봐

할 수 없이 담배도 두 모금, 큼큼,헛기침도 두 번,콧구멍도 두 번 벌름거리게 되었다.'  81쪽

  

희망의 다른 이름이었던 그 암소가 새끼와 함께 늪에 빠져 죽은 다음날

봉태아버지, 폭폭하던 삶의 끈을 스르르 놔 버렸다.

남자들이 돈과 여유가 생기고 기운이 남아있으면 꼭 한다는 짓,

집 밖의 사랑놀음으로 태어난 글 속 화자의 삼촌 브루스리.

황새를 좇아 가랑이 찢어지게 뛰었으나

결국 주류에 편입하지 못하고 끝내 아류 뱁새일 수 밖에 없었던 서자의 기구한 그 운명보다

송아지 한 마리가 주는 소소한 행복에도 마음 놓고 벙싯거리지 못하던

봉태 아버지가 못내 마음에 쓰여 뜨건 프라이팬에 누운양

뒤척거리는 여러 밤을 보내야 했다.

그러고 보면 사는 게 별 거 아닌 듯 싶다가도

또 한순간 무진장 별 거 인 듯 싶다가도 

다시 우습게 별 거 아닌 듯 싶다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