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소한 일상

철원에서 크리스마스 즐기기

타박네 2012. 12. 26. 00:50

 강원도 철원 백마고지역

온누리에 사랑과 평화의 노래가 울려퍼진 오늘, 크리스마스!

울냥반은 공차러 가고 딸아이는 데이트 가고,

휴일이나 공휴일이면 오히려 개 밥의 도토리 신세가 되곤 하는 나는

하릴없는 독거노인 흉내나 내면서 최근에 죽자사자 탐독 중인 <논어>나 좀 더 파 볼 생각이었다.

그도 지치면, 이 풍진 세상을 만났으니 너의 희망이 무엇이냐~

장사익 가락에 까딱까딱 발가락 장단 맞추다가

가끔 베란다 창 밖 메마른 들판을 일별하며 추임새 삼아 한숨이나 내리쉬고 치쉬었을 것이다.

그런던 중에 걸려온 두루미 보러 철원 가자는 제이의 전화 한 통. 할렐루야!

 

행정구역상 강원도 철원은 경기도 연천의 바로 옆 아주 가까운 이웃 도시다.

그럼에도 한파주의보가 내려진 오늘 두 지역의 체감온도는 너무나 차이가 난다.

한파에도 급수가 있는 것인지 철원의 혹한 앞에 연천 북풍한설은 명함도 못 내밀 판이다.   

 

서슬 퍼런 칼바람에 노출된 뺨은 순식간에 연타로 '불꽃싸다구' 얻어터진 것마냥 얼얼하고

들이마시는 공기조차 미세한 얼음조각처럼 아프게 느껴져

습관적으로 써 온 살을 에이고 뼈가 시리다는 말의 의미를 비로소 알았을 정도.

이제껏은 우리나라 최북단 연천의 매서운 겨울 얘기를 무용담처럼 입에 달고 다녔지만

오늘부터 나는 합죽이가 되기로 했다.

 추수가 끝난 들에서 떨어진 곡식 낱알을 주워먹고 있는 재두루미 가족.

민통선안에서 열린 두루미마을 겨울축제.

올해 처음으로 열린 행사라 홍보 부족으로 관광객 방문이 많지 않다.

오늘이 마지막 날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외출이 무서워지는 혹한의 날씨 탓도 크지 않을까 싶다. 

 

 

어지간하면 썰매를 타보고 싶었으나 도무지 어지간하지가 않아서 포기.

행사장 뒤 야트막한 산 아래로 수 많은 재두루미와 단정학무리가 있다는데

마음씨 고약한 내 눈에만 안 보이는 건지 똑딱이카메라가 게을러터진 건지...

방문 기념으로 선물받은 두루미 사진.

검은 털모자 주인공은 연천 문화관광해설사,

흰 털모자는 철원 DMZ해설사로 맹활약 중인 분들이다.

새 박사, 두루미 스님, 생태사진작가란 수식어로 더 알려진 도연스님.

액자 속 두루미 사진은 스님의 작품이다.

추워도 너무 추운 탓에 안면마비가 와 웃음을 잃어버렸다. 우짤~ ㅠ

 

꽁꽁 언 토교저수지

철새는 어디론가 날아가 버리고.

토교저수지에 바라본 눈 덮힌 북한의 오성산.

 

저수지 옆 논에 대머리독수리의 먹이를 던져 놓으면

까마귀나 까치떼들이 먼저 덤벼든다고.

순하디 순한 독수리들, 

이 극악스런 무리의 식사가 끝나기만 기다리며 높은 하늘에서 서성이고 있다.

하늘의 제왕이란 칭호가 민망한 장면이다. 

 

한탄리버 스파호텔(철원군 동송읍)

 

호텔 입구에 철원 사진동호회 회원들의 작품이 전시 중이다.

무슨 대회에서 수상까지 했다는 두루미 사진은 일행의 남편 작품.  

 

 호텔 레스토랑  DR.ROBBIN

 

레스토랑 테라스에서 바라본 한탄강 풍경

 

크리스마스 캐롤을 라이브로 즐기는 시간.

삼일간 열린 송년 음악회가 어제 끝났음에도

일행을 위해 잠시 특별공연을 해주셨다.

가수 조태복님은 예전 그룹사운드 활동을 하셨고

지금은 서울 모던팝스 오케스트라 수석 드러머이자

서각작가로도 유명하신 섹소폰 연주자 소광 전부경님.

음악 선물만으로도 충분히 감동적이었는데

맛있는 고구마 피자와 해물스파게티까지 사주시고.^^

이로써 매운 추위와 좋은 사람들 그리고 아름다운 선율로

내 기억의 저장고가 한층 더 풍요로워졌다.

철원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