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한 밥상

딸이 차린 저녁밥상

타박네 2012. 12. 27. 20:21

 

이웃집에 마실갔다 돌아와 현관문을 여니 얼큰하고 달큰하고 고소한 냄새가

토독톡톡! 경쾌한 도마질 소리보다 먼저 달려 나온다.

때가 되어도 나타나지 않는 엄마를 대신해 피오나가 저녁 준비를 하고 있다.

사 놓고는 갑자기 먹기가 싫어져 냉장고 구석에 방치해 유통기한이 하루 지난 두부를 으깨고 그 안에 

남아있던 토막 채소를 송송 다져 넣어 만든 두부동그랑땡에

언제적이던가... 기억조차 가물가물하다.

아마도 늦가을 어느날 마트 세일상품이었던 것 같다.

마치 전리품인양 뿌듯해하며 한보따리 사들고 와선 곧바로 베란다 선반에 꼭꼭 숨겨뒀던

미니단호박을 찾아내 튀김도 하고 석달열흘 묵어 내 척추마냥 바람 숭숭 든 무 한토막과 어묵을

가쓰오부시 장국에 자작자작 조려도 놓았다.

 

피오나가 주방에 떳다하면 돌아가신 시어머니도 안 하셨던 잔소리 폭탄이 곧바로 날아오는데

그 중 가장 많이 듣는 소리는

'가장 신선할 때 사다 놓고는 냉장고에서 숙성시켜 곰팡이 피기 일보직전 요리해 주시는 우리 엄마'다

요즘엔 아예 장보기 전 사야할 식재료 목록을 검열 당한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내겐 호환마마보다 더 무서운 게 딸아이 눈이고 입이다.

엄마로서의 권위가 실추되는 것 같아 가끔은 골투가리를 부려보기도 하지만

맛나고 편하니 우선은 좋다.

이참에 곳간 열쇠를 확 넘겨줘버릴까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