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번방의 선물
2009년 상영한 '하모니'의 아류작에 불과할 거라며 내심 시큰둥하고 있다가
순식간에 천만 가까운 관객의 눈물샘을 사정없이 쑤셔댄 그 대중성의 힘이 갑자기 궁금해 졌다.
반액할인이란 매력적 유혹에 새벽밥 지어 먹고 조조로 보고 온 영화 7번방의 선물,
관객 천만이 이제 더이상 작품성 예술성의 의미는 아닌가 보다.
뒤틀리고 꼬이고 복잡 난해한 시대를 사는 우리는 어쩌면 백치에 가까운 단순함,
다시 말해 지극한 순수를 늘 갈망하고 있나 보다.
하여 다분히 작위적이고 개화기 신파극 같은
이런 이야기가 먹혀들어가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건 그렇고...
버림 받았거나 낙방을 했거나 한바탕 울고 싶은데 초상집 갈 일조차 생기지 않는다면
울때까지 때리는 이 영화가 대안이다.
극 중 딸보다 지능이 낮아 보이는 아빠 용구를 보면서 이런 생각이 들었다.
세상 모든 부모들에겐 영특하고 잘난 자식이 오직 소원이겠으나
어쩌면 자식에겐 사랑 밖에 모르는 바보같은 부모가 오히려 나을지도 모르겠다는.
변호사처럼 번드르르 잘하는 말솜씨로 끊임없이 잔소리 퍼붓는 부모,
첨단 내비게이션처럼 성공가도만 골라골라 척척 가르쳐주는 부모,
스스로 너무나 잘나서 자식이 한심한 졸로만 보이는 부모,
한재산 물려주는 것으로 도리는 다 했노라 뻥때리는 부모라면 말이다.
불경에 나오는 인연법에 의하면 부모자식 인연이 맺어지기까지
8천겁의 시간이 필요하다고.
이는 부부 인연인 7천겁에 1천겁을 더한 수치다.
천륜이라 부르는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참고로 범천의 하루에 해당되는 1겁이란,
햇수로 환산하면 4억3천2백만년,
인간의 년 월 일로는 헤아릴 수 없는 아주 긴 시간,
하늘과 땅이 개벽한 이후 그 다음 개벽할 동안,
둘레 40리 되는 성 안에 겨자씨를 가득 채워 놓고 하늘에 사는 나이 많은 이로 하여금
3년에 한 알씩 집어 가도록 하여 모두 없어질 때까지의 시간.
자식이란 어쩌다보니 발치에 툭 떨어진 애물단지가 아니라
억겁의 시간을 달려와 이제 막 우리 품에 안착한 귀한 선물이다.
시절이 바뀌어 부부의 인연이라는 게
더러는 석달열흘 삶은 무 같아서 녹슨 칼로도 댕강 잘릴 만큼 허망해졌다.
하지만 결코 쉽게 자를 수 없는 게 부모자식 인연.
그것은 인간의 힘으로는 어쩌지 못하는 1천겁의 무게가 더해졌기 때문이다.
울어라 울어라 부추기는 이런 슬픈 영화가 아니더라도
생각할수록 눈물나게 기막힌 인연이다.
희한하게도 잘나고 똑똑한 부모보다 바보같은 부모가 그 걸 더 잘 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