쑥버무리 망치는 간단한 방법
집에 온다는 피오나 전화를 받고는 제일 먼저 먹고 싶은 게 뭐냐 물었다.
엄마 음식 말고 동네 치킨집 튀김닭이 먹고 싶단다.
품에서 벗어난지 오래된 딸의 변한 입맛을 탓해 뭐하랴.
저야 뭐라거나 말거나 딸이 집에 머무르게 될 이틀 동안
먹일 메뉴를 궁리하고 순서를 정하느라 생각만 바쁘다.
언제나 변함없이 밥 먹었니?로 시작하는 딸과의 대화.
전화 통화나 문자 메세지도 예외는 아니다.
아무리 중차대한 일이 있어도 밥이 우선이다.
피오나는 이런 나를 보며
"엄마는 늘 나한테 뭔가를 잔뜩 먹여야 한다는 강박증을 가지고 있는 것 같아"하며 웃는다.
그것은 나 뿐만이 아니라 세상 모든 엄마들의 치유 불가능한 병이 아닐까 싶다.
어찌보면 자식에게 하고 싶은 수 많은 말들을 함축한 단어가 엄마의 밥일지도 모른다.
사나운 짐승 득실대고 쌩쌩 총알 날아다니는
정글 같고 전쟁터 같은 세상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힘이
오직 밥에서 나온다 믿어서 밥, 밥 하는 게 아니라
엄마 노릇 제대로 못한 것 같은 미안함, 그럼에도 힘 내란 말을
밥이라는 말을 빌어 표현하는 것이다.
엄마들의 밥은 사랑한다와 동의어인 셈이다.
밥 먹었니?라고 엄마가 물을 때 나도 사랑해 라고 대답해도 된다.
오매불망 피오나 올 날만 기다리며 뜯어놓은 여린 쑥 한봉다리.
옷 갈아입는 것 말고 딱히 계절의 변화를 느낄 수 없는 도시에서 생활하는 딸아이에게
꼭 먹이고 싶었던 음식이 쑥버무리다.
혹시 흙이 말라붙어 있어 먹을 때 어적거릴까
여러번 씻어 물기 뺀 쑥에 채에 친 맵쌀가루를 고루 섞었다.
말 그대로 손가락에 힘 빼고 버물버물 뒤적이던 중간에 마스코바도 설탕을 좀 넉넉하게 뿌렸다.
요즘 아이들 입맛엔 달달한 게 나을 것 같아서.
김 오른 찜솥에 베보자기를 깔고 10분 정도 찐 다음 약불로 뜸 들였다.
쑥이나 많이 먹이자 작정하고 쑥 양에 비해 쌀가루를 조금 적게 넣었는데 익히고 보니 적당하다.
유기농 설탕의 노르스름한 때깔은 오히려 더 먹음직스럽고
충분히 뜸 들인 쌀가루도 촉촉하니 잘 익었다.
하지만 망쳤다.
방앗간 아주머니가 불린 쌀을 빻을 때 미리 넣으셨다는 걸 까맣게 잊고 덤썩 친 소금이 화근이다.
한입 먹어본 피오나, 제 어미 타는 속도 모르고 이거 다 먹으면 고혈압 환자 되겠다며 실실 웃는다.
밥 반찬으로 먹을 수도 없고 아까워서 버릴 수도 없고...
자린고비네 집 천장에 매달아 놓은 굴비처럼 부뚜막에 올려놓고는 마냥 쳐다만 보고 있다.
제 원 대로 오자마자 튀김닭 한 마리 시켜
고향의 어머니 손맛이라도 되는 양 맛나게 뜯어 먹은 피오나.
생각만 많았던 엄마가 해 먹인 음식이라고는 결국 못난이 김밥 하나다.
김밥 몇 알 집어 먹고는 다시 바람처럼 휑하니 달아나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