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한 밥상

쑥버무리 망치는 간단한 방법

타박네 2013. 5. 19. 18:24

 

집에 온다는 피오나 전화를 받고는 제일 먼저 먹고 싶은 게 뭐냐 물었다.

엄마 음식 말고 동네 치킨집 튀김닭이 먹고 싶단다. 

품에서 벗어난지 오래된  딸의 변한 입맛을 탓해 뭐하랴.

저야 뭐라거나 말거나 딸이 집에 머무르게 될 이틀 동안

먹일 메뉴를 궁리하고 순서를 정하느라 생각만 바쁘다.

 

언제나 변함없이 밥 먹었니?로 시작하는 딸과의 대화.

전화 통화나 문자 메세지도 예외는 아니다.

아무리 중차대한 일이 있어도 밥이 우선이다.

피오나는 이런 나를 보며

"엄마는 늘 나한테 뭔가를 잔뜩 먹여야 한다는 강박증을 가지고 있는 것 같아"하며 웃는다.

그것은 나 뿐만이 아니라 세상 모든 엄마들의 치유 불가능한 병이 아닐까 싶다.

 

어찌보면 자식에게 하고 싶은 수 많은 말들을 함축한 단어가 엄마의 밥일지도 모른다.

사나운 짐승 득실대고 쌩쌩 총알 날아다니는

정글 같고 전쟁터 같은 세상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힘이

오직 밥에서 나온다 믿어서 밥, 밥 하는 게 아니라

 엄마 노릇 제대로 못한 것 같은 미안함, 그럼에도 힘 내란 말을

밥이라는 말을 빌어 표현하는 것이다.

엄마들의 밥은 사랑한다와 동의어인 셈이다.

밥 먹었니?라고 엄마가 물을 때 나도 사랑해 라고 대답해도 된다.

오매불망 피오나 올 날만 기다리며 뜯어놓은 여린 쑥 한봉다리.

옷 갈아입는 것 말고 딱히 계절의 변화를 느낄 수 없는 도시에서 생활하는 딸아이에게

꼭 먹이고 싶었던 음식이 쑥버무리다.

 

혹시 흙이 말라붙어 있어 먹을 때 어적거릴까

여러번 씻어 물기 뺀 쑥에 채에 친 맵쌀가루를 고루 섞었다.

말 그대로 손가락에 힘 빼고 버물버물 뒤적이던 중간에 마스코바도 설탕을 좀 넉넉하게 뿌렸다.

요즘 아이들 입맛엔 달달한 게 나을 것 같아서.

김 오른 찜솥에 베보자기를 깔고 10분 정도 찐 다음 약불로 뜸 들였다.

쑥이나 많이 먹이자 작정하고 쑥 양에 비해 쌀가루를 조금 적게 넣었는데 익히고 보니 적당하다.

유기농 설탕의 노르스름한 때깔은 오히려 더 먹음직스럽고

충분히 뜸 들인 쌀가루도 촉촉하니 잘 익었다.

하지만 망쳤다.

방앗간 아주머니가 불린 쌀을 빻을 때 미리 넣으셨다는 걸 까맣게 잊고 덤썩 친 소금이 화근이다.

한입 먹어본 피오나, 제 어미 타는 속도 모르고 이거 다 먹으면 고혈압 환자 되겠다며 실실 웃는다.

밥 반찬으로 먹을 수도 없고 아까워서 버릴 수도 없고...

자린고비네 집 천장에 매달아 놓은 굴비처럼 부뚜막에 올려놓고는 마냥 쳐다만 보고 있다.

 

제 원 대로 오자마자 튀김닭 한 마리 시켜

고향의 어머니 손맛이라도 되는 양 맛나게 뜯어 먹은 피오나.

생각만 많았던 엄마가 해 먹인 음식이라고는 결국 못난이 김밥 하나다.

김밥 몇 알 집어 먹고는 다시 바람처럼 휑하니 달아나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