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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무언가를 잃어버린다는 것

타박네 2014. 8. 27. 09:41

 

사람들로 북적이는 대합실 탁자 위에 걸치고 들고 있던 소지품을 모두 올려뒀다.

그리고 바로 옆에 있는 화장실 문을 열며 힐긋 돌아봤다.

뭐 값나가는 것도 아니고 저렇게 많은 사람들이 있는데 설마 어찌 되랴 생각했다.

설마가 사람 때려잡는 것 수도 없이 보며 살아왔으면서도 여전히 나는 설마 설마 하고 있다.

이번 설마도 내 믿음을 비웃으며 탁자 위 소지품을 몽땅 들고 사라졌다.

웅성대는 사람들을 향해 내 말 좀 들어달라,

여기 있던 스카프 한 장과 바느질 도구함을 가지고 가는 사람 혹시 보셨느냐,

악 쓰듯 소리 질렀다.

걱정스런 얼굴로 다가오는 여자의 커다란 가방이 느닷없이 의심스럽다.

대합실을 빠져나가는 아주머니의 등짐도 달려들어 한 번 열어보고 싶다.

혼란스럽다.

서둘러 집을 향해 걷고 있는데 눈 깜짝할 사이 겉옷까지 사라졌다.

품에 안고 있던 작은 가방을 열어보니 다행히 지갑은 들어있다.

이대로라면 곧이어 이 가방마저 사라질 테고 이렇게 하나 하나 사라지다보면

어쩌면 나조차 연기처럼 사라져버릴 지 모른다.

두려움과 추위에 떨며 어두운 밤 거리를 걷고 있는 내게 친절해 보이는 사람이 다가왔다.

믿어야 하나? 망설이는 순간 커다란 발로 가슴을 꾹 밟는다.

숨을 쉴 수가 없으니 살려달라 소리도 나오지 않는다.

친절을 가장한 사람은 웃는 얼굴로 발을 떼었다 다시 밟기를 반복하고

나는 통증보다 더한 공포에 넋이 나갈 지경이다.

악몽같은 그 하루가 지났는지 나는 잠에서 깨어났다.

눈을 떠보니 내 어린 시절 살던 집 작은 방이다.

촌스런 꽃무늬 벽지며 머리맡 옷걸이도 그대로다.

어디선가 들어온 바람결에 옷걸이에 걸린 헝겁 인형이 이리저리 몸을 흔들며 춤을 춘다.

부스스 일어나 방문을 열자 빗줄기가 세차다.

쪽마루 저쪽 모락모락 오르는 김 사이로 아침 준비를 하는 엄마가 어렴풋 보인다.

나는 그 앞에 쪼그리고 앉아 지난 밤 있었던 기막힌 이야기를 일러바치기 시작했다.

얼마나 무서웠는지 그리고 얼마나 아팠는지...

엄마,하마터면 나도 사라질 뻔 했어 라는 말을 하려는 순간

서러운 울음이 차오른다.

순식간에 목구멍까지 차오른 울음으로 또 다시 숨이 막혀 헉헉 거리다가

한순간 펑 숨통이 터지며 이번에는 완벽하게 잠에서 깨어났다.

 

어제 십 년째 들고 다니던 양산을 또 잃어버렸다.

딸아이가 다니던 고등학교 근처 가게에서 오천 원 주고 산 그 양산은

이미 여러 번 잃어버렸다 찾았다를 반복한 전적이 있다.

누가 봐도 탐심이 일지 않을 만큼 낡고 촌스러워

이번에도 주인 손을 찾아 돌아올 거라 믿고는 있다.

어제 움직였던 내 동선을 그려보니,

농협과 국민은행을 차례로 들려 자잘한 일들을 처리했고

국민은행을 나와 바로 앞 포장마차에서 잠시 망설이다

풀빵 이천 원어치를 샀다.

길 건너 두부마을에서 두부 한 모를 주문하고

주인장에게 맛 보라며 풀빵 서너 개를 건네주고 두부를 건네받고...

어딜까?어디에 놓고 왔을까?

지난 밤 악몽은 잃어버린 그 낡아빠진 양산 하나에서 비롯되었을까?

아니면 잃어가고 있는 무언가가 있는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