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곡리 선사유적지 둘레 숲길, 벤치에 세 여자가 앉았다.
강줄기를 타고 흘러온 바람에 좋아죽겠다는 건지
징글징글하단 건지 온몸을 떨며
아우성 치는 초록 이파리들을 본다.
몸살을 하네 하는 비관적인 여자.
춤 추는 것 같은데? 하는 긍정적인 여자.
난리가 났구만 하는 유쾌한 여자.
같은 곳을 바라보고도 저마다 생각이 다른 세 여자가
부처님 오신 날이라고 사찰순례에 나섰다.
순례라고는 하나 뭐 거창한 건 아니다.
저마다 나름 인연을 맺고 있는 가까운 절 세 군데를
하루 안에 다 돌아보자는 것.
운전대만 잡으면 눈 앞에 펼쳐진 도로를
아우토반으로 착각하는 유쾌한 예쁜 여자도
오늘 만큼은 소달구지 과속하는 정도로만 달린다.
뒤따라 오는 차들이 쉬이 추월을 하도록 배려하는 아량까지 보인다.
웬일이냐 하니 아무 말 말고 노인네들은 그저 드라이브나 즐기란다.
길 가에 핀 작은 꽃들까지 식별이 가능할 정도의
그 속도에 적응이 안 된 나는
무의식적으로 가속페달 밟는 시늉을 한다.
참고로 나는 요즘 보기드믄 무면허 인종이다.
대웅전을 새로 올린 내산리 원심원사는 아직 낯설다.
인근 부대에서 단체로 나온 군인들 틈에 앉아
비빔밥으로 점심 공양을 했다.
올들어 처음 먹은 수박이 비빔밥보다 더 맛있다.
다음으로 간 곳은 옆동네 철원 도피안사.
노주지스님의 보살핌으로 절 주변 꽃나무들은 언제나 눈부시고 향기롭다.
일주문 옆 병아리꽃나무는 그새 꽃을 다 떨궜다.
그 허전한 자리를 댕강나무꽃 향기가 가득 메웠다.
공양하고 가세요 하는 보살님 말씀에
방금 전 원심원사에서 먹었던 점심이 눈치 빠르게 소화된다.
일년 중 단 하루 아닌가.
절밥 먹어볼 일이 그리 흔한 것도 아니고.
한 대접 비벼 나눠 먹었다.
미역오이 냉국이 참 맛있다.
마지막 사찰 순례를 잠시 보류하고 정말 오랜만에 약초마을에 들렀다.
과식한 속 다스리는 데 좋은 효소물을 그야말로 배 터지게 마시고
귀한 산삼까지 세 뿌리씩 얻어먹었다.
엄살쟁이 중생들 다독이는 부처님, 먼 데서 찾을 일 아니다.
마지막으로 양원리 능혜사.
지인들에게 말만 들었을 뿐 방문은 처음이다.
공양 얘기가 또 나왔지만 손사래 쳤다.
하지만 서운하니 커피나 한 잔 마시자 들어간 공양간에서
결국 도토리묵 유혹에 넘어가고 말았다.
쑥향이 은은한 절편과 내 씅질머리를 닮았는지
건들기만 하면 파르르 떠는 도토리묵 맛은
한동안 문득문득 생각나지 싶다.
사찰 순례를 마치고도 우리들의 식탐 순례는 밤 이슥토록 끝나지 않았다.
약초대장님이 사주신
얼큰한 민물새우탕으로 화끈하게 휴일 하루를 마무리하나 했더니
돔방각하 부인이 아직 눈꽃빙수가 남아있노라 한다.
이런 날이면 감사함에 앞서 꼭 드는 생각이
내가 이들한테 전생에 무슨 짓을 한 거지?
아마도 좋은 짓을, 그것도 사무치게?
내려놓고 비우는 것의 의미를 생각해도 좋은 날.
먹고 보고 즐기는 모든 것에 조금 과한 욕심을 부렸다.
아무려면 어떠냐.
두 번은 없을 오늘 이곳이 피안이다.
도피안사
도피안사 주변 풍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