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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한 밥상55

시래기된장국 태어나 처음인 더위와 머리털 나고 처음이었던 지난 주말 교통체증에 이어       살다살다 처음일 전기세 폭탄이 곧 배달 되겠죠.      그렇게 사연 많은 여름의 끝자락입니다.      아직도 폭염의 경고는 계속되고 있지만 바람의 결이 달라졌어요.      어젯밤 마트에 가다가 살에 닿는 청량한 바람에 기분이 좋아져       집에 들어오자마자 냉동실에 얼려둔 시래기 한 덩어리를 꺼냈습니다.      시원한 곳과 찬것만 찾아대는 중에도 따끈한 국물이 그리웠거든요.      아침을 준비하는 중간중간 껍질을 벗겼습니다.      질깃한 맛도 나쁘지 않지만       긴 더위에 시달린 속을 살살 달래려면 아무래도 부드러운 게 좋을 겁니다.      다시마와 멸치,마른 표고버섯을 넣고 큰 솥단지 하나 가득 육.. 2016. 8. 18.
개망초 나물 일반적으로 식물 이름 앞에 개자가 붙으면              흔하거나 못생겼거나 맛 없다는 뜻으로 이해하면 된다고 들었습니다.              이건 조금 다릅니다.              봄을 기다리는 이유.         무슨 맛이냐고 물어오면 선뜻 표현할 말이 떠오르지 않습니다.       잎은 유별나지 않을 정도로 고소하고 줄기는 싸브름하죠.       들기름과 참기름을 적당한 비율로 넣고 맑은 간장으로 무칩니다.       그러면 표나지 않던 고소함은 배가 되고 싸브름한 맛은 중화됩니다.       개망초나물은 고추장이나 된장보다 간장무침이 더 잘 어울립니다.       어린 새순은 파릇하게 데쳐 바로 먹고        조금 더 자라면 데치고 말리는 과정을 거친 다음 묵나물로 먹죠.  .. 2016. 5. 2.
맛있는 봄 날마다 산으로 들로 쏘다닌다니 나물하러 다니냐고 많이 묻습니다만,     정작  꽃 보는데 정신이 팔려 봄나물 군락을 만나도 채취할 겨를은 없어요.     풀 먹고 사는 저로서는 그게 늘 안타깝죠.     바닥에 쫘악 깔린 생선을 보고 그냥 지나쳐야 하는 고양이 심정을 상상하시면 되겠네요.^^     작정하고 나선 건 아니지만 어쩌다가 오늘은 나물을 좀 해왔습니다.     처음 들어보는 밀나물과 쑥부쟁이 어린싹      그리고 호박나물이라고도 부르는 어수리를 딱 한 접시 될 만큼 뜯어왔어요.     약초마을에서 구입한 취나물과      어제 카도쉬 사장이 준 오가피잎도 살짝 데쳐 간장과 고추장에 각각 무쳤습니다.     여봐란듯 봄을 차려놓고 남편을 불렀죠.     이 푸닥거리 하느라 저녁이 많이 늦어지.. 2016. 4. 23.
도토리묵전 창문을 여는 순간 코끝 쎄한 찬바람.       제법 맵다.       집안 환기를 시키려다 말고 서둘러 창문을 닫았다.       삼한사온 온데간데 없이 사라진지 오래고 연일 푸근한 날씨가 계속되자       엘니뇨니 지구온난화니 걱정들이 많았다.       그래도 없는 사람 살기에는 우선 날 따순 게 반부주다.       밀가루장사 우산장사 아들 둔 어미처럼 이러면 이게 걱정 저러면 저게 걱정       걱정 없이 산다면 누가 시샘이라도 할까봐        나 역시 걱정을 산더미처럼 쌓아두고 산다.       여수 가서 돈자랑 말고 벌교 가서 주먹자랑 말고 순천 가서 인물자랑 말고,       여기에 하나 덧붙여 철원 연천 와서 추위자랑 말고.       하지만 올 겨울 같아서야...       살다.. 2016. 1. 13.
이보다 더 간단할 수 없는 점심 베란다에 남아있던 아니 남겨뒀던 묵은 김치 한 쪽,          흐르는 물에 살랑살랑 흔들어 헹구니 노란 속살이 드러난다.         이때를 기다렸다.         아무것도 가미하지 않은 그저 따뜻한 밥 조막만하게 뭉쳐          쭉쭉 찢은 김치로 돌돌 말았다.         시고 쿰쿰하고 짜고 달다.         내 입엔 이런 음식이 호사다.         집안 대청소를 마무리하고 먹는 늦은 점심. 2016. 1. 12.
뜨끈뜨끈 묵밥 한그릇 어제 실땅님이 준 도토리묵 한 덩어리.      크리스마스 선물이었을까요? ^^      음주가무만 빼고 다 잘하지만 특히 음식솜씨가 좋은 실땅님.      묵도 잘 쑵니다.      파르르 떨고 낭창거리기가 도도한 평양기생 뺨치게 생겼으면       더 말해봐야 입만 아프죠.       으뜸 중의 으뜸입니다.      오이 쑥갓 넣고 새콤달콤매콤 무쳐도 맛있을 테지만      한겨울엔 뭐니뭐니 해도 뜨끈한 묵밥입니다.      오늘 새벽 헬스장 가는 남편을 따라 일어나       육수를(멸치 다시마 마른표고 파뿌리) 끓였어요.       역시나 솜씨 좋은 님들이 주신 김장김치.      달랑 한 대뿐인 냉장고에 다 넣지 못하고       한 통는 베란다로 쫒겨났는데요.      겨울치고 푹한 날이 계속.. 2015. 12. 26.
바람든 무 사용설명서 지난 토요일,사랑하는 쑨의 딸 결혼식에 참석해       먹지도 못하는 핏물 줄줄 흐르는 스테이크 접시를 앞에 두고는       내 배 곯는 건 둘째치고 괜히 참석해 비싼 식비만 쓰게했구나 미안했다.      결혼식 피로연을 마치고 광장시장 들러       사람들 북새통인 골목을 휩쓸려 다니다가 필요한 약 몇 가지 사 돌아오니       해 넘어간지 오래.      일요일엔 차탄천 한바퀴 휘이 돌고       부랴부랴 중학교 동창들로 구성된 합창단 공연을 보기 위해 수레울 아트홀로,      어제는 왕언니님들을 뵈러 의정부 백화점으로.      주말과 평일 구분 없이 고루 바쁜 게 백수 생활 특징이다.      한바탕 푸닥거리를 마친 뒤,피로가 겹겹이 쌓인 아침.      그래도 하던 짓은 한다.    .. 2015. 12. 15.
이제 좀 살겠다! 몽룡이가 춘향이 어찌해볼 요량으로 어르고 달래듯 살살 씻어 물기 뺀 어린 상추.         오늘 아침, 얼굴도 모르는 동네 어르신댁 손바닥만한 텃밭에서 솎아왔다.         가시 억센 게 더러 들었다고 알아서 먹어보라며 지인이 준 삶은 두릅,          된장과 들기름만으로 무치고         송반장이 만든 특제 양념고추장에          엊그제 실땅님이 갖고 온 햇된장 두어 숟갈 푹 퍼넣고 석석 섞었다.         서로 모르는 이들의 사랑과 적선이 우리집 식탁위에 모였다.         이렇게 어울렁더울렁 사는 거다.         볼이 미어터지게 쌈을 밀어넣는 나를 보며 피오나가          날마다 항암식만 먹으니 엄마는 장수하겠어 한다.         그러려고.         .. 2015. 5. 7.
묵은지 된장조림 물컹한 김치 한 점 얹은 밥 숟가락을 입에 넣을 때마다 추임새처럼 맛있다를 연발하는 나를 보며 그렇게 맛있으면 진작 해 먹지 무슨 대단한 요리라고 뜸을 들였느냐 어이 없는 표정으로 남편이 말한다.뭘 모르시는 말씀!씨앗에서 싹 틔우고 비바람 견디며 단단하게 속 채우는 일련의 과정은 차치하더라도 겹겹이 품은 양념이 제 살 속으로 완벽하게 스며들 때까지의 세월만 봐도 김치는 보통의 음식과는 차원이 다르다.게다가 묵은지 아닌가.먹기 좋게 마치 잘 발효된 익은 김치가 아니라 기다리다 기다리다 속 물러터지기 일보직전의 묵은지 말이다.된장 또한 슬로우푸드의 대명사로 말할 것도 없고 이 둘의 조합은 밥상에 오르기까지의 시간 계산만 하더라도실로 대단한 요리 맞다.시어터지다 못해 문드러진 김치에 된장 한 숟가락 멸치 서너.. 2014. 11. 27.
막걸리 찐빵 음식을 만드는 일에 자신감을 잃은 지 오래다.얼마 전 내가 만든 굴전을 먹어본 아는 동생이 그동안 모양새 번지르르했던 내 음식 솜씨가 실상은빛좋은 개살구에 몽땅 구라뻥이었다며 지인들한테 폭로하기에 이르렀다.변명같은 해명을 좀 하자면 신종플루에 걸려 입맛이 개판이 된 즈음이라 소금과 설탕의 맛조차 구별하기 힘든 상태였다.하고 보니 구차스럽지만 뭐 그러저러한 연유로 탄생한 굴소금전을 좀 먹었기로서니 그럼 쓰냐? 주방에서 지지고 볶는 일이 짜증나는 노동이 아니라 즐거운 놀이였던 때가 있었다.이제는 전설이 되었지만 내 손에서 조물딱 만들어진 음식에 눈이 먼저 감탄하고 입이 감동하는 순서를 거쳐 살이 오동통 풍선처럼 부풀어 올랐던 시절이었다.그 아름다운 시절은 어머님이 돌아가시고 딸아이가 기숙학교에 입학을 하면서.. 2014. 4. 22.
상추김치 엄마 밥 먹자고 집에 온 딸아이에게 연거퍼 소금범벅을 먹인 게 얼마 전 일인 데다가남편과의 오붓살벌했던 엊그제 저녁 식사시간 이후 밥상 트라우마가 장난이 아닌 지금,가만 놔두어도 제풀에 기죽어 고꾸라질 꺽어진 반백의 고지를 힘겹게 넘고 있는 이 때.잘한다, 잘한다 꽹가리 치고 나발 불어줘도 바닥에 널브러진 용기를 다시 추스려 세우기엔 역부족인 이 상황에서이것도 요리랍시고 들고나와 포스팅을 하기 까지 많은 용기가 필요했다.  더이상 구라청이 아닌 기상청의 일기예보 대로 장대비 퍼붓던 엊그제 일이다. 골난 바람이 골목에서 씩씩 거친 숨소리를 내며 벼르고 있어 장 보러 나갈 엄두조차 못 내고애꿎은 냉장고 문만 열었다 닫았다 하다가 저녁을 맞았다.냉장고 안은 아무 생각 없는 내 머리통 만큼이나 텅 비어 있다.그.. 2013. 7. 4.
쑥버무리 망치는 간단한 방법 집에 온다는 피오나 전화를 받고는 제일 먼저 먹고 싶은 게 뭐냐 물었다. 엄마 음식 말고 동네 치킨집 튀김닭이 먹고 싶단다. 품에서 벗어난지 오래된  딸의 변한 입맛을 탓해 뭐하랴.저야 뭐라거나 말거나 딸이 집에 머무르게 될 이틀 동안 먹일 메뉴를 궁리하고 순서를 정하느라 생각만 바쁘다. 언제나 변함없이 밥 먹었니?로 시작하는 딸과의 대화.전화 통화나 문자 메세지도 예외는 아니다.아무리 중차대한 일이 있어도 밥이 우선이다.피오나는 이런 나를 보며 "엄마는 늘 나한테 뭔가를 잔뜩 먹여야 한다는 강박증을 가지고 있는 것 같아"하며 웃는다.그것은 나 뿐만이 아니라 세상 모든 엄마들의 치유 불가능한 병이 아닐까 싶다. 어찌보면 자식에게 하고 싶은 수 많은 말들을 함축한 단어가 엄마의 밥일지도 모른다.사나운 짐승.. 2013. 5. 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