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텃밭일기64

일 년 만에 쓰는 남의 집 꽃밭일기 4월.      꽃들도 바쁘지만 나도 바쁘다.      알 수 없는 이유로 삶과 죽음의 경계에 있는 꽃들은      과감히 뽑아 자리를 옮겨 줘야한다.      힘내라고, 부디 살아남아 꽃을 피우라고,       쓰담쓰담 대신 거름흙 듬뿍 주는 것도 잊지 말아야 한다.      흥부네 단칸방처럼 옹색하기 그지없는 꽃밭에서       지인들이 주신 갖가지 씨앗들을 뿌릴 최적의 장소를 찾는 것도      보통 어려운 게 아니다.      까칠하거나 잠깐 한눈파는 사이 남의 영역을 침범하는 무작스런 녀석 옆자리 피하고      점점 몸집이 불어날 것을 대비해 최소한의 공간을 확보해줘야 하는 녀석 곁도 안 되고      내 등짝에 심을 수도 없고...      해도 어울렁 더울렁 다 살기 마련이다.      흥.. 2022. 4. 19.
남의 집 꽃밭 일기 지주님이 깔고 앉은 집터를 제외하고 남은 땅은 해가 오래 머물지 못한다.하루가 다르게 쑥쑥 자라는 이웃집 꽃들을 볼 때마다 뽀득뽀득 마디게 크는 우리 아니 내 꽃들이 안쓰럽다.할 수만 있다면 젖동냥 하듯 햇살 동냥이라도 하고 싶다.  그렇게 당부했음에도 공사 자재에 깔리고 흙더미에 묻히고 잘려나간 꽃들이 많았다.다시 고랑을 만들고 내가 들 수 있는 한 가장 큰 돌들을 조금씩 주워와 화단을 정비하고 있다.씨앗에서 발아한 노랑참나리와 앵초와 흰무스카리는 이제 더이상 떠돌지 않아도 될 자리에 안착했다.죽은 줄 알았던 꽃들이 새순을 빼꼼 내밀면 고맙다, 절이라도 하고 싶어진다.내가 삽질을 하고 호미로 흙을 곱게 부수고 이리저리 옮겨 심고 물을 줄 때여전히 지주님인 언니가 가끔씩 나와서 절대 안 하겠다 약속한 간.. 2021. 4. 7.
마지막 꽃밭일기 그럴 일 없을 거라던 그럴 일은 아주 쉽게 일어났다.텃밭이자 꽃밭이고 풀밭이던, 해서 무엇이라 불러도 이상하지 않았던 자리에집 하나가 순식간에 우뚝 세워졌다.마치 램프의 요정 지니의 소행인 것 같다.그러려고 그랬는지 올봄 무스카리 꽃들은 유난히도 풍성했다.작약은 눈부셨고 으름덩굴은 기운차게 담장 철망을 휘감고 올랐다.노랑참나리며 수박풀 공단풀 씨앗 묻은 자리마다 어김없이 새싹이 돋아났다.하다하다 아무렇게나 툭툭 썰어 (죽으면 죽고 살면 살고) 심은 씨앗감자도썩은 거 하나 없이 모두 싹을 틔웠다.가만...꽃을 본 기억이 없다.꽃이 핀 뒤 열매를 맺는 건 식물의 보편적 순서인데 감자는 예외인가?아무튼 중장비가 밀고 들어오기 전 가까스로 세숫대야 하나 분량의 감자알을 수확했다.충분히 여물지 못한 감자는 게으른.. 2020. 10. 9.
다시 만나는 기쁨 아침을 먹자마자 텃밭으로 달려가는 일상이 시작되었다.            빨리 가고 싶어 식사 시간을 조금 앞당겼다.            지각하게 생긴 학생이나 직장인처럼 종종걸음으로 도착한 텃밭에서의 할일은 정작 많지 않다.            혹한의 겨울을 나느라 기진해 붉게 단풍든 시금치를 다듬거나            뿌리가 튼실한 고들빼기를 캐거나            밭고랑을 정리하거나            앞다투어 흙을 밀어 올리는 골리앗 구근 새싹들을 넋놓고 바라보는 게 전부다.            4월의 텃밭은 열두 달 중 가장 순하고 정갈하다.            너그러운 시각으로 보면 야생화임에도 내게는 물귀신에 다름 아닌 개망초나 강아지풀 비름나물들이             게으름 피우는 .. 2020. 4. 4.
7월 꽃밭 아슬아슬하게 7월 텃밭꽃 몇 개 올리고 내일이면 벌써 8월. 2019. 7. 31.
유월 텃밭 유월의 텃밭은 꽃과 채소 과일,모든 게 풍요로웠다.           바지런한 일동무 하나 생기면서            물귀신처럼 발목을 잡고 늘어지던 풀들로부터 해방이 되자           꽃씨 뿌린 자리에서 노닥거릴 시간이 많아졌다.           내 꿀떨어지는 눈빛과 간절한 기도를 끝내 외면한 등심붓꽃, 불암초와 달리           별 기대없이 마구 뿌려댄 구절초와 매발톱과 수박풀은 풍작이다.           성장이 빠른 락도요 선생님댁 수박풀 모종까지 얻어와 심어놓으니            든든하기가 만석군 부럽지 않다.           허구헌날 꽃 보러 다닌다며 그래,뭐가 제일 예뻐?           누가 물으면 제일 먼저 떠오르는 건 수박풀.           첫 대면에서 기절할 .. 2019. 6. 29.
5월 텃밭 여덟시에서 여덟시반, 텃밭으로 향하는 시간이다.            근처 초등학교 정문을 지나기에            등교하는 아이들 재잘거리는 소리와 등교를 돕는 학부모들과 차량으로            하루 두 번쯤 있는 번잡함을 뚫고 지나간다.            어쩌다 조금 늦으면 거리는 다시 적막한데 그 적막을 나 만큼이나 싫어하는            참새 서너 마리가 콩콩 뛰기도 하고 포로로 날기도 하고            그 사이로 동네 강아지 똘이도 어슬렁 어슬렁,            할매 유모차 달달달...                        피고 지고 또 피는 소래풀은 열꽃 안 부러운 효자,            흥부 뺨 치게 자손 불린 참나리,            돈값 하라 보채지도.. 2019. 5. 13.
4월 텃밭 더디 오지만 거침 없는 게 이곳 봄이다.           복사꽃이 와르르 피자 텃밭 여기저기서 와글와글 난리가 났다.           지난 가을 묻어둔 꽃씨들 중 제일 먼저 올라온 건 매발톱이다.           이런 성질 급한 애들 참 마음에 든다.           금꿩의다리인 줄 알고 사다 심은 산꿩의다리는 담장 가장자리로 쫒겨났고            명당을 찾아 이리저리 옮겨 다니던 다알리아는            결국 해 잘드는 고려엉겅퀴 있던 자리에 안착했다.           그 과정에서 몸살을 심하게 앓는지            내 지극한 애정공세에도 불구하고 영 싹이 돋지 않는다.           지나치면 사랑도 독이라더니.           꽃밭도 사람 세상과 다르지 않아 이곳에서도.. 2019. 4. 25.
애타게 봄을 기다린 이유 2019. 4. 21.
함께 하는 텃밭놀이 시작~ 나보다 더 마음 급하고 힘도 센 농군 하나 때문에 서둘러 텃밭놀이를 시작한다.            호랑이 출몰 구역은 이미 번듯한 밭 꼴을 하고 있다.            이장님댁 밭 부럽지 않을 날이 머지 않았다.            힘을 덜게 되어 한편 쾌재를 부르기도 하지만             더이상 자연주의 농법을 주장할 수 없으니 아쉽기도 하다.            구절초와 쑥부쟁이,매발톱과 부추의 새싹이 꽃처럼 어여쁘다.            올해도 잘 놀아보자.            함께라서 신난다.                노동의 보상으로 커피만한 게 없다.              꽃과 함께라면 금상첨화. 2019. 3. 20.
꽃무릇 꽃무릇 구근이 장바닥에 나왔다.   고양이가 생선을 그냥 지나칠 수 없지.   구입 의사와 상관 없이 우선 아이쇼핑은 해야 한다.   크기별로 나눠진 뿌리는 가격도 달랐다.   하나에 이천 원부터 삼천 원까지,생각보다 비쌌다.   난감하네...   고르고 자시고 할 것 없이 그대로 몽땅 싸들고 가면   밭 한 고랑은 채우겠는데 말이다.   저만치 앞서 간 상상 속 텃밭은 이미 온통 붉은 바다.   그 정도면 매해 추석 즈음 노래 부르곤 하는    불갑사라던가 선운사 얘기가 쏙 들어가고도 남을 테지만   당장 주머니 속 현금으로 살 수 있는 건 달랑 세 뿌리.   가능하다 해도 내 좁쌀만한 간으로는 검지 손가락 쫙 뻗어    여기서부터 저기까지 다!는 절대 외칠 수 없을 게 뻔하다.   다음 생엔 부디 간.. 2018. 12. 4.
끝나지 않은 텃밭일기 싹 틔울 자리에서 겨울잠을 자야할 씨앗들을 땅이 얼기 전 묻어야 했기에   밭에서 멀리만 돌아치는 마음을 붙잡아 들이느라 힘들었다.  해마다 여기 저기 뿌렸으나 제대로 건진 건 공단풀 뿐.  대부분은 원치 않는 풀들 틈에서 주눅들어 기를 못 펴거나 녹아 사라졌다.  이번에는 조금 과감하게.  물빠짐이 잘 되고 볕 좋은 명당을 골랐다.  그건 아무리 봐도 고려엉겅퀴 자리다.  깊게 내린 뿌리를 캐내느라 애를 좀 먹었지만 이제 삽질 정도는 껌이므로.  작은 플라스틱 화분을 땅에 파묻고 분갈이용 흙을 채웠다.  추운 겨울을 나야 하므로 씨앗은 조금 깊게,  그리고 이름표까지 똬악~  남은 씨앗들은 남은 공간에 뒤죽박죽 뿌렸다.  매발톱,하늘매발톱,패랭이,범부채,불암초,등심붓꽃과 수박풀.  땅 속 가득 보석을 .. 2018. 11. 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