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을 먹자마자 텃밭으로 달려가는 일상이 시작되었다.
빨리 가고 싶어 식사 시간을 조금 앞당겼다.
지각하게 생긴 학생이나 직장인처럼 종종걸음으로 도착한 텃밭에서의 할일은 정작 많지 않다.
혹한의 겨울을 나느라 기진해 붉게 단풍든 시금치를 다듬거나
뿌리가 튼실한 고들빼기를 캐거나
밭고랑을 정리하거나
앞다투어 흙을 밀어 올리는 골리앗 구근 새싹들을 넋놓고 바라보는 게 전부다.
4월의 텃밭은 열두 달 중 가장 순하고 정갈하다.
너그러운 시각으로 보면 야생화임에도 내게는 물귀신에 다름 아닌 개망초나 강아지풀 비름나물들이
게으름 피우는 이 짧은 시간 동안 채에 두 번 걸러 포슬해진 쌀가루같은 흙은 온전히 내 몫이다.
터가 바뀌는 바람에 심하게 몸살을 한 백작약은 거의 부활이나 환생한 만큼의 기적이어서
그 어떤 식물보다 재회의 감격이 크다.
참, 노랑참나리의 번식도 있다.
참나리와 뒤섞일까봐 씨앗을 받아 지난 가을 따로 묻었었다.
내 기억으로 한 알조차 허실 없이 전부 싹을 틔운 것 같다.얏호!
광대나물의 번식력에도 찬사를 보낸다.
아직은.
아직은이라고 한 건 아마도 당장 내년쯤엔 남의 구역을 침범하거나
내가 특별히 편애하는 꽃들 옆에 바짝 붙어 괴롭힌다면 그 번식력이 재앙이 될 터.
하지만 그땐 그때고 지금은 사랑만 하기로 했다.
사실 사랑 받기에 충분한 광대나물이다.
어디에나 흔하다고는 하지만 얘들은 다르니까.
지금도 진행 중이지만 전철공사가 한창이었던 지난 해 봄,
장에 다녀오다 역사 부근에 위태롭게 피어있는 광대나물 군락을 보았다.
무겁고 커다란 바퀴에 언제 짓밟힐 지 모르는 풍전등화의 상황이었다.
뽑혀 쌓인 녹슨 철로 옆에 꽃들을 해맑아 더 짠했다.
텃밭으로 달려가 호미와 비닐봉지를 들고 왔다.
뿌리는 깊지 않았다.
광대나물이 자리잡은 곳은 쓰레기더미였다.
개천에서 용이 나도 이 보다 더 대견할까 싶었다.
그런 사연으로 텃밭에 그것도 특별관리구역에 자리잡은 광대나물이다.
반면에 정말 사랑하는 꽃들이지만
내가 눈감아 주기만 한다면 텃밭 전체를 집어삼킬 기세로 퍼진
공단풀과 수박풀, 니들을 어쩌면 좋으냐.
다글다글 모여 짖궂은 표정으로 나를 빤히 보고 있는
그 앙증맞은 것들을 뽑아내는 손가락이 죄책감에 떨린다.
이해해라,나도 살아야겠다며 속으로 중중거려 본들.
텃밭도 또한 한세상이어서 삶과 죽음,번성과 몰락, 차별이 일상다반사다.
더러 내탓도 있고 제탓도 있고 느닷없는 엉뚱한 놈의 탓도 있다.
며칠 전 다 죽어가게 생긴 원예용 노루귀를
귀한 대접하는 식물들만 모아둔 밭고랑에 고이 옮겨 심었다.
굳이 바라진 않았으나 안 하면 서운했을 감사 인사인양 잎 하나가 고개를 바싹 치켜올렸다.
그래, 애썼다 하고 심폐소생술로 사람 하나 살린 듯 가슴이 벅차올랐는데
그만 어떤 개삐리리가 똑 잘라 먹었다.
부러지거나 밟힌 게 아니라 아주 동강 잘려 흔적조차 없는 것으로 보아 따먹었다고 확신한다.
설마?
제 구역처럼 버티고 있다가 내가 나타나면 기분 나쁜 듯 눈치를 보다가
후다닥 사라지곤 하는 고냥이녀석?
심증은 그러하나 물증이 없으므로.
어쨌든,다시 만나니 반갑다.
고맙다.
텃밭 광대나물
지난 봄,역 부근 광대나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