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텃밭일기

남의 집 꽃밭 일기

by 타박네 2021. 4. 7.

지주님이 깔고 앉은 집터를 제외하고 남은 땅은 해가 오래 머물지 못한다.

하루가 다르게 쑥쑥 자라는 이웃집 꽃들을 볼 때마다

뽀득뽀득 마디게 크는 우리 아니 내 꽃들이 안쓰럽다.

할 수만 있다면 젖동냥 하듯 햇살 동냥이라도 하고 싶다.  

그렇게 당부했음에도 공사 자재에 깔리고 흙더미에 묻히고 잘려나간 꽃들이 많았다.

다시 고랑을 만들고 내가 들 수 있는 한 가장 큰 돌들을 조금씩 주워와 화단을 정비하고 있다.

씨앗에서 발아한 노랑참나리와 앵초와 흰무스카리는

이제 더이상 떠돌지 않아도 될 자리에 안착했다.

죽은 줄 알았던 꽃들이 새순을 빼꼼 내밀면 고맙다, 절이라도 하고 싶어진다.

내가 삽질을 하고 호미로 흙을 곱게 부수고 이리저리 옮겨 심고 물을 줄 때

여전히 지주님인 언니가 가끔씩 나와서 절대 안 하겠다 약속한 간섭을 하기도 한다.

속에서 천불이 확 치밀어 들고 있던 삽자루를 패대기치고 싶지만...기꺼이 참아낸다.

내 땀과 손길로 키워온 저것들을 몽땅 파내서 갈 곳이 있다면 모를까.

굳은 땅에 분갈이용 흙을 섞어 갈아놓았다.

포슬해진 고랑엔 상추씨를 뿌릴 참이다.

울타리 가까이에 소래풀과 매발톱,서양메꽃 씨앗을 뿌렸고

집 주위로 모과나무와 앵두나무,홍매, 사철장미,모란을 심었다.

어느 날 무심히 <모란동백>이라는 노래를 듣던 중 그 노랫말이 가슴을 파고들었고

그날 이후 그게 그거라고 여기던 마음이 변해 작약보다는 모란이지 싶으면서

모란이 필 때까지 나를 잊지 말아요 당부할 사람 하나 없는데도

모란,모란 노래를 하며 빛깔 고운 모란을 열심히 찾고 있다.

꽃을 보기까지 얼마나 많은 걸음을 해야할지 모르겠다.

오가는 길이 자갈길이라면 끝내는 모래로 변하리.(어디서 주워들은 풍월 한 소절)

 

 

 

 

 

 

그렇게 튼실하던 흰금낭화가 작년엔 올라오지 않았다.

혹시 이녀석이 아닐까 조심스레 기대 중이다.

화원에 주문을 부탁했다가 일단 취소했다.

개복숭아 꽃을 찍어 미국에 사는 동생에게 자랑질하던 지주님이

우리 집 정원사라며 이 사진도 보냈다.

그렇잖아도 짓고 있는 집이 완공되면 와서 예쁘게 꽃밭 좀 만들어 달라 애원 중이다.

길이 어지간해야 마음을 먹든 뱉든 하지, 참내...

잘하면 미국 정원사로도 취직할 판이다.

 

 

노랑참나리

 

 

'텃밭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일 년 만에 쓰는 남의 집 꽃밭일기  (0) 2022.04.19
마지막 꽃밭일기  (0) 2020.10.09
다시 만나는 기쁨  (0) 2020.04.04
7월 꽃밭  (0) 2019.07.31
유월 텃밭  (0) 2019.06.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