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무릇 구근이 장바닥에 나왔다.
고양이가 생선을 그냥 지나칠 수 없지.
구입 의사와 상관 없이 우선 아이쇼핑은 해야 한다.
크기별로 나눠진 뿌리는 가격도 달랐다.
하나에 이천 원부터 삼천 원까지,생각보다 비쌌다.
난감하네...
고르고 자시고 할 것 없이 그대로 몽땅 싸들고 가면
밭 한 고랑은 채우겠는데 말이다.
저만치 앞서 간 상상 속 텃밭은 이미 온통 붉은 바다.
그 정도면 매해 추석 즈음 노래 부르곤 하는
불갑사라던가 선운사 얘기가 쏙 들어가고도 남을 테지만
당장 주머니 속 현금으로 살 수 있는 건 달랑 세 뿌리.
가능하다 해도 내 좁쌀만한 간으로는 검지 손가락 쫙 뻗어
여기서부터 저기까지 다!는 절대 외칠 수 없을 게 뻔하다.
다음 생엔 부디 간 큰 부자로 태어나게 해 주시던가
꽃무릇 알뿌리를 트럭 가득 싣고 와 청혼하는 남자와 인연을 이어 주시던가...
하마터면 담판 짓자며 하늘님에게 덤벼들 뻔.
내일 한파가 닥친다니 마음이 다급해졌다.
얼마 전 다알리아 뿌리는 캐서 집 안에 들여놨지만
대책 없이 큰 키 때문에 레몬 유칼립투스는 결국 포기했다.
줄기가 제법 실하다고는 하나 워낙 따뜻한 환경을 좋아하는 식물이라
그대로 두면 냉해를 입을 건 뻔하다.
살면 살고 죽으면 죽고.
말은 냉정했으나 마음은 줄곧 불편했다.
그 마음 좀 편하자고 부랴부랴 뽁뽁이를 꺼내 길게 자르고 스카치 테잎을 챙겨 나갔다.
곁가지는 어쩔 수 없다 해도 이렇게나마 해야 북풍이 창밖에서 잉잉거리는 밤,
두 다리 뻗고 잠들 수 있을 것 같으니.
다정도 병이라...이 무슨 불치병도 아니고...참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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