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텃밭일기

시월 텃밭

by 타박네 2018. 10. 24.

 서리 내린다는 상강도 지났는데 어쩌자고 꽃은 자꾸만 핀다.

  미스터 선샤인의 변요한처럼

  아름답고 무용한 것들에 마음을 쉽게 주는 나는 걱정 하나를 더 보탠다.

  밤 사이 꽃잎이 얼지나 않을까 아직 여린 봉오리들도 많은데...

  어깨 아끼느라 풀들을 실하게 키웠다.

   속 시끄러운 날에는 밭으로 간다.

   그곳에는 내 머리 속 잡념처럼 와글와글 잡초들이 지천이다.

   날 선 새것도 있지만 손에 익은 녹슬고 무딘 낫을 집어 든다.

   그리고 오롯이 풀과 낫에만 집중하는 시간들.

   스님들의 삭발의식이 이와 같을까 생각했다.

   아픈 어깨만 아니라면 내년에도 두어 고랑쯤 잡초를 키워

   신들린 낫질을 계속하고 싶다만.

   손바닥에 물집이 잡혔다 터지길 수 차례.

   어쨌든 올해 풀 농사 한 번 잘~ 지었네.

   솎은 무는 지주님과 재벌친구에게,

   여덟 개씩이나 수확한 고구마 중 가장 큰 왕당구리 하나는

   약속한 대로 카사장한테 전달했다.

   장난도 아니고 저게 뭐하는 짓이냐며

   골목을 지나는 어르신 몇몇분들은 여전히 혀를 끌끌 차시지만

   나는 장난 아니게 힘들었으며 그만큼 또 행복했다.

   텃밭농사의 좋은 점 하나.

   비록 폭망했다 하더라도 해마다 봄은 돌아오고 다시 꿈 꿀 수 있다는 것.

   이거 정말 엄청난 거다.

   이제 곧 땅은 죽음처럼 어둡고 깊은 잠에 빠지겠지만 나는 동지섣달 긴긴밤,

   어찌하면 갈라터지지 않는 고구마를 수확할 수 있을 지,

   벌레들에게 덜 삥뜯기고 케일을 오래 따먹을 수 있을 지 궁리하느라

   밤잠을 설치게 될 것이다.

   그 즐거운 상상은 찬바람만 불면 사나워지는 심사를 나긋나긋하게 만들 수도.

   어쩌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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