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년 전, 이제 막 봄이 시작된 어느 날,
연천읍 사거리 부근에서 이 만물상트럭을 보았죠.
그 때 저는 트럭 건너편에서 전곡행 버스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신탄리 방향으로 돌린 시선 끝자락에서 달려오는 버스를 발견했지만
길 건너는 걸 포기했었지요.
몇 해 전, 흔치 않은 저 산더미같은 물건들을
아주 잠깐 아이쇼핑으로 끝내야 했던 때가 있었죠.
그건 두고두고 아쉬움으로 남았습니다.
그리고 며칠 전,전곡 시내에서 다시 이 만물상트럭을 만난겁니다.
무얼 기다리거나 바쁜 일이 있는 것도 아니어서
이번에는 느긋하게 쇼핑을 즐겼습니다.
가장 궁금한 걸 먼저 물었죠.
혹시 5년 전쯤 연천역 근처에 오신 적 있나요?
팔도를 떠돌며 장사를 하신다는 분께
특정한 시간과 장소를 묻는 건 어리석은 짓이었죠.
아무려나 없는 거 없는,처녀**말고는 다 있는 산더미 구경은 신나는 일이었어요.
백화점이나 홈쇼핑 방송에서도 한결같이 굳건하던 제 이성이
한 순간 무너지는 곳이 바로 오일장터와 지하철 안 그리고 이런 만물상 앞입니다.
어렵사리 운전면허증 취득은 했으나 따로 제 전용차가 있는 것이 아니어서
여전히 이동수단은 BMW입니다.
걷는 일이 가장 많고 다음으로 버스,버스 못지않게 전철도 많이 타죠.
1호선에는 유독 잡상인이라 부르는 장사꾼들이 많습니다.
불법판매를 단속하는 사람들도 있고 방송도 하지만
틈새를 이용한 판매는 여전합니다.
그 여전한 판매를 즐기는 사람이 바로 저구요.
우선 때맞춤 판매전략이 참 놀랍습니다.
비 온다는 걸 잊고 나온 날이면 우산과 우비가,
황사 미세먼지 시작되는 계절 초입에는 일명 강도마스크가,
가로수에 푸른 물 드는 햇살 눈부신 날에는 냉장고 팔토시와 접이식 모자,
야외용 돗자리, 김장철엔 칼갈이나 간편한 채칼, 꽃무늬 고무장갑,
한겨울에는 쓰다가 한 짝 잃어버려도 크게 미련남지 않을 가격의
보온장갑이나 허리보호대가 눈 앞에 딱 나타납니다.
마치 알라딘의 요술램프처럼 말이죠.
어르신 이용률이 높은 1호선 특성을 제대로 파악한 상품들도 많습니다.
인삼향이 나는 저렴한 파스는 인기상품인 듯 보입니다.
휴대용 돋보기는 저도 대여섯 개 샀죠.
들고 다니다가 슬슬 노안이 온 친구들에게 하나씩 나눠주면 참 좋아들합니다.
주머니용 후레쉬와 미니 LED독서램프,
막힌 세면대 배수구를 뚫는 데 효과 만점이라는 생선뼈 모양의 도구
바르는 순간 뭐든 붙여버린다는 순간접착제를 구입하는 사람들 대부분은
나이 지긋한 남자분들인 것도 참 재밌습니다.
순간접착제 말인데요.
혹시...걸핏하면 집 나가는 마눌님을 방구석에 붙여놓고 싶은 간절함이
이런 구매현상으로 표출되는 건 아닐까
속으로 생각면서 허파에 바람 빠지는 듯 실실 웃기도 했습니다.
한방에 와닿는 판매방식도 충동에 부채질을 하죠.
허리에 차고 머리에 쓰고 두르는 건 기본이고
쓱쓱 둬번 바르기만 했는데 파리가 낙상할 정도로 번쩍이는 구두와
샤악 채칼이 지나간 자리에 종이짝처럼 얍실하게 잘린 오이를
얼굴에 척허니 붙이는 모습을 코 앞에서 보고 있노라면
이건 뭐 시장바닥인지 마술쇼인지 당최 분간이 안 갈 정돕니다.
생산지나 유통과정 안전성 여부를 따지기에는 민망한 정도의
가격 또한 매력적이죠.
전철 바닥에 풀어놓으니 멍멍도 아니고 낑낑도 아닌 소리를 내며
사람들 발치를 종횡무진 기어다니는 장난감 강아지만 빼고는
거의 다 구입해본 거 같네요.
참,의료용 제품은 제외했습니다.
그쪽 제품에는 별로 관심이 없습니다.
아무튼 닷새만에 한 번씩 돌아오는 장날이든 오년만에 돌아온 만물상이든
단속반에 쫒겨났다 어느 틈에 다시 돌아온 전철 보따리상인이든
제게는 그저 지나칠 수 없는 소소한 즐거움입니다.
참, 이날 뭘 샀느냐구요?
사고 싶은 건 많았죠.
망촛대나물 널어 말리면 좋겠구나 싶었던 너른 대나무 채반과
짚으로 만든 작은 새장은 눈으로 쓰다듬다 결국 놓아버렸지요.
대신 조그만 삼태기 하나와 갈대로 만들었다는 이 역시 작은 비 두 개를 샀습니다.
용도를 묻는다면 아무 할 말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