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 저물면 시작해 다음 날 점심까지
퍼붓고 뿌리고 흩날리기를 반복하는 게 장맛비의 공식이 됐나 봅니다.
그리고 점심 먹을 즈음이면 하늘을 가리고 있던 잿빛 커튼 한겹이 슬그머니 열립니다.
이때부터는 자꾸 눈치를 보게 되죠.
우산은? 바깥 나들이 계획은?
눈칫밥 먹으며 뼈를 굳히고 살을 불린 저는
밥은 어쩔 수 없다 치고 하늘 눈치까지 보고 싶지 않다는 이유로
기상청 일기예보에 귀 기울이거나 하늘 안색을 살피는 짓 따위는 하지 않았습니다.
뿌리고 던지고 쏟아붓는 대로 대책없이 맞고 돌아다니는 그닥 나쁘지 않았구요.
것도 하늘 일이니 그렇지 사람 짓이라면 어림택도 없죠.
아무튼 그랬습니다만 걸핏하면 뼈시린 나이가 되고 보니 사정이 달라집니다.
거적을 걸쳐도 곱던 젊은 시절 함부로 하던 몸뚱이를 요즘들어 그렇게 아낄 수가 없어요.
오염된 비를 맞고 소중한 머리카락 빠지면,행여 감기라도 걸리면,
감기 끝에 폐렴이나 몸살이라도 앓게 되면 어쩌나...
내 몸은 소중하니까요.
나가기로 한 시간대의 일기예보를 검색하니 우산이 뜹니다.
오전엔 이미 한 차례 호우주의보도 발령됐었죠.
조울증 환자의 조증 상태처럼 당장 반짝 한다해서 안심할 상황은 아닙니다.
몸을 사리는 저와는 다른 종족의 사람들이 출발을 하잡니다.
늘 그랬듯 줄레줄레 따라 나섭니다.
강가에 이르자 예상했던 것처럼 벌겋게 성난 물살의 포효하는 소리가 들립니다.
저쯤일 거야.
나풀거릴 하얀꽃 있는 방향을 손가락으로 가리켰죠.
꽃장포는 제아무리 용감한 왕자님도 절대 접근하지 못할 바위절벽에
그것도 거친 물살에 포위되어 있습니다.
되돌리는 발길이 많이 서운치는 않았습니다.
차라리 잘 된 건지 모르겠다는 생각도 했습니다.
손에 들린 똑딱이가 벌쭘해 할까봐 사람으로 치면 내 나이쯤 보이는 꼬리조팝나무 하나 똑딱 찍어봤습니다.
한 번이면 정 없으니 한 번 더 똑딱!
어떻게 나온 집인데 이대로 들어가는 건 외출에 대한 예의가 아니죠.
카페에서 요즘 뜬다는 콜드블루 라떼 한 잔에 시시콜콜한 잡담을 버무리며 놀다가 텃밭으로 갔습니다.
실땅님 카메라 셔터소리가 경쾌한 풀 반 꽃 반인 반반 텃밭월드~
봄에 심은 오이도 아직 잘 열리고 있습니다.
마트에 가보니 요즘 오이값이 금값이더군요.
금덩어리 씹는 심정으로 먹으니 어찌나 맛있는지요.
이건 여름오이랍니다.
물 좋아하는 식물이 흔한 비를 만나니 하루가 다르게 쑥쑥 자랍니다.
그새 손바닥 길이만한 게 두 개 달렸어요.
어쩌다 가지 모종을 여덟 개나 심었어요.
한두 개만 있어도 질리고 물리게 먹을 수 있는 채소가 가집니다.
여덟 개면 농장 수준이죠.
벌써부터 엄청나게 달리고 있어요.
금새 상하지도 않고 나눠 먹기도 좋은 채소라 그나마 다행입니다.
늦여름이면 여덟 개에서 나오는 수확물이 어마어마 할 겁니다.
오일장에 이고 나가서 가지 팔아 돈 사오면 어떨까 즐거운 상상도 하죠.
똑 사세요 똑!
드라마 속 예쁜 떡장사처럼 똑 부러지게 외칠 수나 있을까요?
가지 사세요 가지!
발음 잘 해야지 자칫 실수하면 개망신 당하겠네요.
상상만 하는 걸로요.^^
갯기름나물(방풍나물)에 산호랑나비 애벌래가 엄청나게 달라붙어 있습니다.
거의 손가락만한 것도 있어요.
크지만 징그럽지 않죠.
예쁘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