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해부턴가 꽃을 감상하는 사람보다 찍는 사람들이 더 많아졌다.
아름다운 꽃 앞에서 제대로 눈인사할 겨를도 없이 박격포만한 카메라를 조준하고는
그대로 드드드득 갈겨대는 모습은 이제 낯선 풍경이 아니다.
저마다 사랑의 표현 방식은 다를 것이다.
먼길 수고로움 마다않고 달려가 찍고 담고 자신만의 저장고에 차곡차곡 쟁여뒀다가
북풍만치나 서늘한 바람 무릎뼈에 스밀 때 하나 둘 꺼내 바라보며
따스한 미소 머금을 수 있다면 그도 행복한 일이지 싶다.
하지만 넘치면 모자람만 못하다.
멋진 작품을 담자니 구도에 방해가 된다해서 소나무 수십 그루를 잘라냈다는
유명 사진작가의 얘기를 듣고는 씁쓸함을 넘어 경악한 적이 있다.
흔히 보기 힘든 야생화가 피었다는 곳에 가보면 어김없이 맞딱뜨리는 광경이라
이제는 새삼스러울 것도 없다.
소위 그림 좀 될만한 꽃 옆에 초라한 모습으로 피어 있는 꽃들의 수난사는
눈물 없이 볼 수도 들을 수도 없을 지경이다.
못났다 외면당한 서러움이야 그들이 떠나고 난 뒤
지나는 바람에 미주알 고주알 고자질하며 풀수나 있지
밟히고 뽑히는 데야...
그렇다고 간택당한 경국지색 야생화 팔자도 그다지 좋아보이지는 않는다.
이제 겨우 따뜻한 햇살 좀 즐겨보나 싶으면 설중화 찍는 답시고 눈 퍼다 뿌리고
무슨 야사시한 컨셉을 잡았는지 스프레이통을 들고 다니며 물까지 뿌려대니
아닌 봄날 횡액이 따로 없다.
아, 그리고 그대 앞에만 서면 느닷없이 결벽증이 도지는 님들.
시든 잎부터 주변 낙엽들을 비로 싹싹 쓸어낸 것처럼 말끔하게 치워주시는 바람에
그 여린 꽃들은 맨몸으로 칼바람 맞으며 사거리에 선듯 참담하다.
아는 만큼 훼손되고 보이는 만큼 사라지는 꽃들의 세상도 우리네 만큼 폭폭해졌다.
이런저런 생각으로 뒤척이다 자문한다.
너에게 꽃은 어떤 의미인가.
사랑인가 치유인가 탐욕인가.
나에게 꽃은 무슨 의미인가.
내 발자국이라도 덜어내야 하는 건가.
손 닿는 곳에 핀 꽃들은 대부분 이렇게 시든 잎들이 잘려있다.
꼭 첩*한테 머리 뜯긴 본처같구나 하니 듣던 사람이 피식 웃는다.
처음 지날 때와 달리 바위가 온통 젖어 있어 이 무슨 해괴한 일인가 했다.
고개를 들어보니 누군가 잔뜩 물을 뿌려놓았다.
이슬방울이나 빗방울 맺힌 청초한 모습을 연출하려 했던 모양이지만
내 눈에는 동강할미꽃의 서러운 눈물로 보여 애잔하기만 하다.
다음 세상이란 게 있다면
꽃으로 태어나고 싶다했던 소망을 아무래도 버려야 할까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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