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고드름
아침 일찍 성산 시산제에 갔던 실땅님이 생각보다 일찍 끝났다며
꽃 보러 가보자 전화를 한 게 오후 1시 조금 넘은 시간.
춘삼월이라지만 오전 싸락눈이 내렸다는 골짜기의 주인은 아직 동장군이다.
며칠 전부터 하늘 눈치만 살피던 복수초들은 잔뜩 기죽어 있다.
발길을 돌려 신탄리 역고드름을 보러 갔다.
대부분 녹고 부서졌다.
그대로 돌아오기에는 아쉬움이 남아 잠깐 고대산에 오르기로 했다.
바람이 거세 1코스 임도는 포기했다.
실땅님은 등산 채비를 단단히 했지만
나는 복수초나 좀 보자고 뒤늦게 따라나선 길이라 평상복 차림이다.
산을 오르며 하산하는 등산객들을 만났다.
너무 늦은 시간 아니냐 걱정들을 하신다.
나무다리를 지나 좁다란 산길에 들어서자 저만치서 경찰 두 분이 소리쳐 부른다.
늦은 시간 위험하니 올라가지 말라는 줄 알고 깜짝 놀라 멈춰섰다.
알고보니 어르신 한 분이 미처 내려오지 못한 할머니를 찾아달라
신고를 했다며 약수터를 물어보신다.
약수터 이상은 가시지 않았을 거란다.
하산하는 산객들에게 일일이 물어보며 약수터까지 동행했다.
약수터에서 물 한 모금 마시며 숨 한 번 고르고
그분들은 내려가고 우리는 조금 더 오르기로 했다.
고대산 3코스
아무리 만만한 동네 산이지만 조금 늦은 시각이고 면바지에 부츠 신고는 위험하다.
해서 표범폭포까지만.
폭포가 얼어 거대한 얼음산이 되었다.
계곡물에 아이젠을 씻던 실땅님이 봄이라고 물이 차갑지 않네 한다.
그래?
바위에 걸터앉아 실땅님이 시산제에서 얻어온 시루떡을 뜯어 먹다 말고
솔깃해 손 담궈보니 겁나게 시리다.
둥둥 떠있는 얼음덩어리를 보고도 따뜻할 거라 믿은 내가 멍충이지.
이제부터는 사람 말 함부로 믿지 말고
가까운 사이일수록 더 믿지 말아야지 다짐했다.ㅋ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