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수나무 어린 묘목 여섯 그루를 얻어와 심었습니다.
말을 하니 나무지 아직은 실오라기 같습니다.
흙에 거름과 영양제를 넉넉히 줬어요.
제 키를 훌쩍 넘어서 양산 크기만한 그늘이라도 만들 날이 올까요?
제법 듬직해진 나무에 등 기대고 앉아 달콤한 향기를 맡으며
이제는 화석이 된 첫사랑을 떠올릴 날이 있기나 할까요?
뿌리가 흙을 단단히 움켜쥐는 법을 알기도 전에 밭주인님이 나가라 하면
이 어린것들을 데리고 어디로 가야 하나...
근심에 근심을 보탭니다.
부산에 사는 블친님이 택배로 산딸기를 보내주셨어요.
담장 아래 자리를 잡아줬습니다.
소문 덕에 텃밭이 전국구가 되어갑니다.
십시일반 보태주신 묘목과 꽃들과 씨앗으로
텃밭은 경주 최부자댁 곳간이 부럽지 않게 됐습니다.
곳간에서 인심 난다는 말 참말이더군요.
얻어 먹는 낙이 주는 낙보다 월등 컸던 날들이었어요.
거만하게 받고 비굴하게 주기가 제 신조입니다.
조금 극단적인 표현입니다만.
그대여,나누어 줄 수 있는 기쁨을 마음껏 누리세요,
줄 수 있는 행복을 누릴 수 있게 해주셔서
참으로 감사합니다와 같은 의미입니다.
그간 참 거만했습니다.
현금 다발과 에르메스 가방이 오가는 블록버스터급 주고 받기면
기쁨의 크기도 그와 같을까요?
안타깝지만 저와 제 주변 지인들은 그런 면에서 참 쪼잔한 편입니다.
개미들처럼 자잘한 무언가를 쉼없이 나르며 살죠.
상추 봉다리를 현관 문고리에 걸어두고 오면
호박부침개 둬 장이 우리집 문고리 걸려있는 식입니다.
부침개 속에 모르는드끼 미친드끼 물방울 다이아라도 하나 박아 놓으면
얼마나 훈훈하겠습까만
그런 일은 죽었다 깨어나도 절대 일어나지 않을 동네에요.
그 앞에 딱 쪼그려앉아 하도 살펴대니 그만 부끄러워 벌개진 토마토 몇 알,
기생오래비처럼 매끈쪽쪽 잘빠진 가지며
이름값 하느라 어린 것이 독부터 오른 청양고추,
숨은 보물찾기 하듯 너른 잎들을 헤집어 제법 살오른 애호박을 따고
물 냄새만 맡아도 자라는 상추 솎아서 집으로 가는 길.
만나는 사람 붙잡아 세우고는 이것 좀 드실래요?
이런 자디잔 즐거움.
장마가 시작됐나요?
텃밭의 어린것들에게는 이런 무작스런 빗줄기가 처음일 겁니다.
이제 겨우 붉은빛을 올리기 시작한 홍화꽃은 또 어쩐답니까...
